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그동안 환상적인 기량을 뽐내며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던 전 세계 스포츠 영웅들이 이번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이라는 이름을 내려 놓았다.
`아디오스(안녕)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은반과의 작별을 고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인 228.56점과 함께 세계 정상에 오른 김연아는 대회 종료 후 은퇴와 현역 연장을 두고 고민했다.
이미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김연아는 "소치동계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하겠다"며 올림픽 2연패에 도전했다.
여인의 성숙미까지 더한 여왕의 연기는 다시 한 번 세계를 유혹했다. 김연아는 지난 20일 펼쳐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74.92점)를 차지하며 금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도를 넘은 홈 텃세가 김연아의 꿈을 가로막았다. 하루 뒤 진행된 프리스케이팅에서 러시아 선수 델리나 소트니코바(17)가 상식 밖의 고득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편파 판정` 논란이 일며 세계가 분노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연아는 담담했다.
그는 "18년 가까이 선수생활을 해왔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됐는데 홀가분한 마음이다"며 "대회는 잘 끝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메달보다는 출전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속상함은 전혀 없다. 항의를 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앞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라는 새로움 꿈에 도전할 계획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대들보` 이규혁(36·서울시청)도 이번 올림픽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이규혁은 1994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마친 후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던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한 번 소치동계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지난 12일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에서 1분10초0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40명의 선수 중 21위를 차지했다. 이규혁의 올림픽 마지막 기록이다.
비록 메달과의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경쟁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야인이 된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이 없어서 대회에 출전한다고 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스케이트 선수가 계속 하고 싶어서 그같은 핑계를 댔던 것 같다"며 "올림픽 메달도 중요했지만 스케이트 선수라는 자체가 큰 행복이었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평창동계올림픽에 도전하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그들을 돕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소치동계올림픽을 자신의 은퇴 무대로 정한 해외 선수들도 많다.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다.
2005~2006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김연아와 피겨 여자싱글을 양분했던 아사다는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에게 밀려 은메달을 딴 후 부진에 늪에 빠졌다.
2012~2013시즌 두 차례 그랑프리시리즈와 그랑프리파이널을 제패하며 부활을 선언한 아사다는 2013~2014시즌에도 두 차례 그랑프리시리즈에서 모두 200점을 넘기며 정상에 섰다. 그랑프리파이널에서도 204.02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수확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려온 아사다는 20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또다시 금메달의 꿈과 멀어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아사다는 142.71점을 받으며 개인 프리스케이팅 개인 최고점 경신했다.
경기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린 아사다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일본을 대표해 연기를 펼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을 오늘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 항상 지지해준 많은 분들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아사다는 향후 행보에 대한 일본 언론의 질문에 "아직 아무런 생각도 없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여전히 일정이 많다"며 현역 생활 유지 가능성도 남겨 놓았다.
일본 남자 피겨의 `기둥` 다카하시 다이스케(28)는 소치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이번 대회에서 현역으로서의 제 경력은 끝이 날 것이다.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다카하시는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후배 하뉴 유즈루(20)와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다카하시는 피겨 인생 마지막 연기에서 6위를 차지했다.
바이애슬론의 `살아있는 신화` 올레 아이너 뵈른달렌(40·노르웨이)도 소치에서 전설의 마지막 장을 썼다.
불혹의 나이에 또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는 뵈른달렌은 "무거운 결정을 내렸다. 소치에 참가하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 모든 것을 미뤄놓고 최고의 경기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며 마지막 무대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더없이 완벽한 은퇴 무대였다. 뵈른달렌은 바이애슬론 남자 10㎞ 스프린트와 남·녀 혼성 계주에서 2관왕에 오르며 크로스컨트리 종목의 뵈른달리(47·노르웨이·12개)가 보유했던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13개(금 8개·은 4개·동 1개)로 갈아치웠다.
그는 또 40세 20일의 나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땄던 캐나다의 더프 깁슨(47)이 세운 동계올림픽 개인종목 최고령 금메달 기록(당시 39세190일)을 넘어섰다.
밴쿠버동계올림픽 바이애슬론 여자 15㎞ 개인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토라 베르거(33·노르웨이)는 이번 대회 남·녀 혼성 계주와 여자 4×6㎞ 계주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확하며 풍성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아이스댄스 최강자 테사 버츄(25)-스캇 모이어(27·이상 캐나다)·밴쿠버동계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금메달리스트 스티븐 홀콤(34·미국)·일본 여자 피겨의 스즈키 아키코(29)·밴쿠버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 팡칭-통 지안(이상 35·이상 중국) 등도 소치동계올림픽을 통해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
은퇴를 번복한 스타도 있다.
토리노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챔피언인 러시아의 `피겨 황제` 예브게니 플루셴코(32)는 지난 14일 피겨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출전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불과 닷새 만에 입장을 바꿨다. 플루셴코는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10번이라도 더 수술을 받아 부상을 완전히 털어내고 싶다"며 "은퇴하고 싶지 않다. 5번째 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