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 / 언론인  매리언 킹 허버트는 에너지 분야의 `닥터 둠(Dr. Doom)`이었다. 허버트 박사는 석유 생산량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석유 생산량을 종형 곡선(bell curve)으로 설명했다. 석유 생산량이 유전 개발 직후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만 얼마 후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하다가 결국에는 고갈되고 만다는 주장이다.  허버트는 1956년 미국석유협회 주최 회의에서 미국의 석유 생산이 1965년과 1970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허버트 정점(Hubbert`s Peak)`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허버트의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1970년 정점을 기록하자 허버트는 졸지에 `노스트라다무스`로 떠올랐다. 미국은 서둘러 석유 수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60년대에도 석유를 수입했지만 전체 수요의 90%는 국내 생산으로 충당했다. 미국은 대규모 석유 수입국가로 바뀌었다. 미국의 석유 수입 급증은 오일 쇼크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허버트는 보다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석유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순간일 뿐"이라며 "196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죽기 전에 세계 석유는 고갈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간은 허버트의 예언을 배반했다. 2010년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590만 배럴로 늘어났다. 허버트가 1971년 제시한 전망치(150만 배럴)와 비교하면 4배 수준이었다. 허버트는 두 가지 중요한 변수를 빠트렸다. 바로 `기술 혁신`과 `가격`이었다. 정보기술(IT)에 힘입어 석유 탐사 능력은 혁명을 맞이했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하 구조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허버트의 전성기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유전 탐사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수평 드릴링(horizontal drilling)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수직으로 1km 이상 파내려 가다가 방향을 바꿔 비스듬히 옆으로 파내려 갈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기술 혁신은 매장량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석유 가격 상승도 공급 증가를 촉진했다. 가격은 경제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신호다. 가격이 올라가면 잠재적인 공급자가 늘어난다. 수요 증가와 함께 석유 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과거에는 경제성이 떨어졌던 유전도 가격 상승에 힘입어 `알짜`로 탈바꿈했다. 탐사 기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지만 원유 개발은 엄청난 끈기를 필요로 한다. 북해 노르웨이 소유 구역에서 개발된 에코피스크(Ekofisk) 유전이 대표적인 예다. 필립스 석유는 이 구역에서 200개 이상의 유정을 뚫었다. 하지만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치열한 논쟁 끝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뚫어보기로 했다. 사용료를 미리 지불했는데 시추선을 놀리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 1969년 말 마침내 그곳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 에코피스크는 최소한 2050년까지 원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더욱이 에너지소비가 가파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전세계 에너지 소비가 15% 증가한 데 반해 우리는 무려 200%나 늘어났다.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무엘 헌팅턴 전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의 중요한 국익 가운데 하나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꼽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은 높은 에너지 자급률을 자랑한다. 그래도 에너지 확보를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추진한다. 우리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무려 97%에 이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외 자원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부채 감축을 위해 해외 에너지 개발 사업을 축소한다.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의지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인 해외 자원 개발을 밀어붙인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가 바뀌면 주요 정책도 수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다 해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도 있는 법이다. 지주(地主)가 바뀌었다고 모내기가 끝낸 논을 갈아 엎고, 과수원으로 만드는 짓은 피해야 한다. 10년 이상의 장기 과제를 5년 단위로 바꾸면 그것 또한 `세금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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