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2차 상봉자들이 24일 2시간여 동안 비공개 개별상봉을 가졌지만 "(북측 가족들이)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고들 한다"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데 대해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우리측 357명, 북측 88명의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9시께부터 11시까지 약 2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비공개 개별상봉을 가졌다. 개별상봉을 마치고 나온 남측의 한 가족은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고들 하는데 무슨 깊은 이야기를할 수 있겠나"며 "북에서 하는 일은 뭔지, 다들 똑같이 입고 온 양복은 누가 맞춰준건지 그런 걸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있나"라고 한탄했다. 이 가족은 또 "그저 순 옛날 얘기, 친척 얘기나 하고 또 했지 뭐"라며 "또 다시 볼 수도 없겠지만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몸 건강히 살아계신 거나 확인했으니 그만 됐고, 이젠 만나도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어"라고 말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가 죽은 줄만 알았던 형 신덕균(86) 씨를 만난 남동생 신선균(83) 씨는 "형님이 통 말을 안 혀"라며 안타까워했다. 신 씨는 "형이 여태껏 제 나이도 모르고 산 모양이다. 81살로 돼 있는데 내가 83이거든. 그래서 내가 형님께 `형이 내 형이여? 아우여?` 하니까 세 살 아래 아우 맞다고 그러잖아"라며 씁쓸해했다. 역시 의용군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형 김병문(83) 씨를 만난 남동생 김병룡씨는 "이제 기회가 없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서운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형님께 아버지 사진을 보여드리니 붙잡고 한참을 우시더라"라며 "북쪽에서 형님이 날 찾아서 봤는데 이제는 내가 신청해도 못 볼 것 아니냐"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쟁 때 헤어진 후 60여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오빠 전영의(84) 씨를 만나러 온 여동생 김경숙(81·여) 씨는 오빠를 위해 준비한 소중한 옷가지들을 비공개 개별상봉 때 하나하나 풀어 보여줬다. "오빠 살아계실 때, 이것도 입어보시고, 저것도 입어보시고…" 그러자 전영의 씨는 큰 소리로 성을 내며 "너희가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이게 뭐냐!"라고 야단을 쳤다. 보다 못한 전 씨의 북측 아들이 "아버지 그만하시라요"라고 말렸다. 여동생은 "우리가 오빠 한 번만 만나보려고 기다렸어요. 그렇게 만난 오빠에게 우리가 가진 것 다 드려도 부족한데…"라며 오열했다. 김경숙 씨는 이 일을 전하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그렇게 말씀하셔야 하는 현실이, 우리가 헤어진 시간, 이 현실이 서럽고 비참해서 눈물이 난다"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공동중식 시간 오빠 전영의 씨가 가족 테이블에 나타났고 오빠가 앉자마자 두 여동생은 다시 오빠 손을 부여잡고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내 울었다. 제주 4·3사건 때 학교에 갔다가 끌려가 죽은 줄만 알았던 형 리종성(84) 씨를 만난 동생 이종신(74) 씨는 개별상봉 때 "몸은 마르셨는데 발이 퉁퉁 부은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신 씨는 개별상봉 후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 인원이 많아 형 리종성씨가 계단으로 내려가자 "형님을 내가 업어서 데려가게 하면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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