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선 / 언론인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마침내(?) 낙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점을 인식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건의를 전화로 받고 그 자리에서 해임을 전격 결정했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장관쯤 되는 고위직은 경질 사유가 생겨도 곧바로 해임하지 않고 자진해서 사표 낼 기회를 주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다 듣기에도 민망한 성추문을 일으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조차도 그랬다. 윤 전 장관에게는 그러나 그런 배려조차 생략됐다.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을 거쳤겠지만 총리의 해임건의권 발동도 매우 이례적이다.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란다. 당시에는 고건 총리가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했었다. 해임건의권이 또 해양수산부 장관을 겨냥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겠으나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고도 여성 고위 공직자는 여전히 드문 현실에서 도무지 두 명뿐인 여성 각료 중 한 명의 불명예 낙마는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을 둘러싸고는 워낙 말이 많았다. 잇단 동문서답과 시도 때도 없이 흘리는 실없는 웃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봉숭아학당’으로 전락시키더니 재임기간 열 달 내내 구설을 계속 몰고 다녔다. 오죽하면 그의 경질 소식이 전해지자 신문들이 ‘윤진숙 어록 일지’를 앞 다퉈 다뤘겠는가. 말하자면 “여수 기름 유출 사태의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이고 어민은 2차 피해자”라는 발언은 일련의 황당한 언행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언론이 이번 사태를 ‘예고된 귀결’로 규정한 것도 그래서다. 걸핏하면 보수와 진보로 갈려 정반대의 진영논리를 펴곤 하는 언론이 이번엔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한마디로 ‘나 홀로 수첩 인사가 빚은 참사’라는 것이다. 정치권 역시 이구동성이다. 외려 여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경질을 요구했다. 윤 전 장관이 해양환경 분야에서는 인정받는 학자일지 몰라도 장관감은 도저히 못 된다는 게 언론계와 정치권, 일반시민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정작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은 그런데도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갓 임명된 청와대대변인을 시켜 짧은 발표문을 내놨을 뿐이다. 상황 파악도 채 안 된 대변인은 기자들 질문을 받느라 곤욕을 치렀다. 물론 박 대통령이 앞서 강력한 경고를 발령하기는 했다. 얼마 전 개인정보 유출 사태 때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국민의 분통을 사자 “공직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어 유감”이라며 “재발하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고 못 박았다. 윤 전 장관은 그 첫 번째 시범 사례로 찍힌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사람 잘못 본 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윤 전 장관 발탁 당시 자질론이 제기되자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로까지 비유하며 임명을 강행한 이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다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정식으로 사죄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단단히 다짐하는 게 도리다. 장관만 다잡을 게 아니라 대통령 본인부터 반성해야 한다. 윤 전 대변인 때에도 그냥 넘어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말 많던 그를 고집스레 청와대까지 데리고 들어갔다가 그런 나라 망신을 자초했다면 응당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차제에 박 대통령의 인사 방식에 근본적인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 주인 눈치를 잘 읽고 지시를 잘 따르는 ‘충복’만 뽑아서는 성공한 정부가 되기 어렵다. 장관들이 이른바 ‘적자생존(적는 자만 살아남는다)’으로 항간의 우스개가 되는 것도 인사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수첩 인사’라는 비아냥이 시사하듯이 대통령의 독단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식이라면 이번 같은 ‘인사 만행’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장관이라면 국민이 가려운 곳을 찾아내 시원하게 긁어 주는 정무적 재량도 발휘하고 때로는 인사권자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 유능하고 담대한 행정가로서의 그릇을 갖춰야 한다.
역대 대통령 누구나 인사 보안을 강조했지만 박 대통령은 유난히 심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인사는 보안 못지않게 검증에도 방점이 찍혀야 한다. 공무원이나 학자, 기업인으로는 훌륭해도 정무적 재량이나 판단력은 장관감이 못 되는 수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보안에 너무 치우치다 검증이 소홀해지면 이번처럼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인재풀도 확 넓혀야 한다. 지금처럼 ‘내 사람’만 챙기는 식이라면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대통합’은 한낱 구두선일 뿐이다. 가뜩이나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터에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이’니 하며 그 반쪽마저 4분5열한다면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조야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두루 구한다면 청문회의 벽도 거뜬히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잘 뽑은 장관은 충분한 재량을 허용하고 웬만하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는 관행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보은 인사용이나 정국 돌파용으로 심심하면 갈아치우는 게 장관이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