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언론인 안철수 의원이 마침내 ‘대한민국 정치인’이 됐다. 축하!!안 의원은 3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진짜 정치인이 된 건 엊그제부터다. 엊그제부터 대놓고 전형적인 한국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습? 우리 모두 잘 안다. 그럴 듯한 약속을 많이 하는 것. 약속을 파기하는 것. 약속 파기의 원인과 책임은 다른 쪽으로 떠넘기는 것. 약속 파기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은 내비치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이 모든 게 오직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그동안 합당 상대인 민주당을 수시로 비판하며 민주당과는 "선거 연대조차도 안 한다"고 말해왔다. 민주당을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못 박더니 이런 민주당과의 “정치공학적 연대는 결코 없을 것”이라며 “정당이라면 선거에서 독자적으로 이겨야 한다. 연대해서 이긴다는 것은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도 말했다.
이 모든 발언은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나 후보 단일화 없이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이 약속을 짓밟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합당 발표 바로 다음날 새정치연합 운영위원회에서 “합당은 기존정치 구도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으며, 그 이유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적반하장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약속을 어긴데 대해 국민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먼저 약속을 파기한 것은 맞다.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던 지난 대선 공약을 새누리당이 뒤집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도 궁색하기만 해 혓바닥을 찬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나도 약속을 파기한다? 너무 저급한 핑계다. ‘네가 바람피우니 나도 바람피운다, 네가 도둑질을 하니 나도 도둑질 한다’와 뭐가 다른가? 차라리 바람피우는 게, 도둑질이 부럽고 좋아보였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나았겠다.
안 의원은 ‘새정치를 하겠다’는 한 마디로 벤처기업인에서 단번에 유력 정치인이 됐다.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겠다는 그의 말과 행동은 우리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가져왔다. 안철수야말로 이 지긋지긋하고 짜증나며 국민을 불쾌하게만 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을 개혁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다. 그의 ‘새정치’에 대해 ‘알맹이가 없다.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지만 ‘대한민국 정치개혁을 위해 안철수가 무언가 큰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새누리당을 뒤따라 민주당도 기초단체장 공천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우리는 기초단체장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그에게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것,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새정치의 시작이 된다고 믿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가 이번 합당 결정으로 진짜 대한민국 정치인이 됐다. 그러나 그가 말해온 ‘새정치인’은 아니다. 뻔뻔스럽고, 쉽게 말을 바꾸고, 책임은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세가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적과도 동침하고…. 안 의원은 ‘대한민국 헌정치인’이 됐다. 이제 이런 기술을 좀 더 세련되게 연마할 수 있다면 오래오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다. 본인이나 국민 모두 대한민국 벤처기업인 안철수를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만드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였다. ‘새정치’란 말을 안했으면 안 들 비용이었다.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아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