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극 / 언론인기대와 불안이 교차한 뉴밀레니엄이 시작되고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새천년의 첫날 비관론자들이 경고한 `Y2K 대재앙`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확인됐다. 그 전날까지도 컴퓨터가 2000년 끝 두 자리 00을 인식하지 못해 시스템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그럴듯한 우려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돼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코미디 같은 소동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상용품을 사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그 당시 혹시 모를 대정전 사태에 대비해 구입해 놓은 어린애 팔뚝 굵기의 양초가 지금도 시골집 서랍장 어느 구석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13년간 그 양초를 킬만한 정전사태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앞날을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재앙은 엉뚱하게도 그 이듬해 9월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덮쳤다. 뒤늦게 테러의 전조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그 같은 묵시론적 테러리즘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10년 뒤 3월 일본 도후쿠 대지진과 쓰나미, 잇단 원전폭발은 ‘세계의 종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이런 재앙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미래를 연구하고 예상을 내놓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다음 주 금요일 기온을 맞추긴 힘들어도 10년 뒤 3월 평균기온을 맞추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고 미래는 현재가 연장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롤프 옌센 `르네상스 소사이어티`) 추세가 이어지는 큰 흐름은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미래학자들은 새로운 르네상스가 이미 시작됐고 10년 뒤엔 세상이 또 한번 뒤집어지는데 그 배경이 될 대표적 신기술이 3D프린터, 드론(무인비행기), 로보틱스 등이라고 한다. 10년 전에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가 세상을 바꿔놓을 거라고 상상 못했던 것처럼 이 신기술들이 세상을 삽시간에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지 모른다. 3D프린터는 SF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기술인데 어느새 현실이 됐다. 적용가능한 분야가 아직은 제한적으로 보이지만 갈수록 기술이 축적되면서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기세다. 집안에서 3D프린터로 필요한 물건들을 다운로드 받아 쓰는 세상이 온다면 기업의 형태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제조공장과 물류가 사라지면 기업은 제품을 설계만 하면 되니 현장을 누비는 수족은 축소되고 두뇌집단만 비대해져 상상 속의 외계인의 모습처럼 변해 있을까. 드론은 한술 더 떠 벌써 오지에 코카콜라나 피자를 배달하는 CF에까지 등장했다. 카메라를 장착하면 헬기를 대신해 산불이나 밀렵꾼을 감시하고 범죄자가 은닉한 곳을 추적하고 적군의 동태를 살필 수도 있다. 철가방을 부착하면 짜장면도 배달할 수 있고 웬만한 퀵서비스는 물론이고 외진 마을에 금방 인쇄된 신문을 보낼 수도 있다. 10년 뒤 하늘엔 드론이 메뚜기떼처럼 떠다니고 교통통제를 위해 경찰드론도 나타날지 모른다. 구글은 로봇관련 업체들을 열심히 인수합병하고 무인자동차 시험주행도 시작했다. 막대한 제작비용이 문제이지 콘셉트카를 뛰어넘는 수준의 무인자동차는 이미 개발이 된 모양이다. 10년 뒤엔 이들 무인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 위에서 운전자가 되레 거추장스런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가오는 미래사회에선 지식보다 감성, 이윤보다 가치가 더 중요시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술과 지식은 갈수록 보편화되고 제품의 기술수준도 표준화되기 때문에 결국 제품에 고유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독특한 감성뿐이라는 것이다. 가방, 향수가 아니라 루이뷔통이나 샤넬이란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뉴밀레니엄 이후 10여 년간 세계인들은 너도나도 이윤만을 추구할 때 지구가 얼마나 황폐해 지는지 개인과 사회가 얼마나 삭막해 지는지 충분히 봐왔기 때문에 그런 이윤추구에 목을 맨 기업이나 개인은 더 이상 대접받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볼 때 다가오는 10년 역시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예측 못한 천재지변이 발생해 미래학자들의 청사진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골집 서랍장 속 양초를 떠올릴 때마다 지나친 비관론은 때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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