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용 / 공학박사, 한글공학연구소장  우리 조상은 이미 3000년 전에 별자리를 보고 고인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천문학을 꾸준히 발전시켜 조선 태조 때인 1395년에는 세계 최초로 1467개의 별을 밝기에 따라 구분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228호)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이 지도가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던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의 석각본이라 하니 우리 조상들의 천문학 수준을 알만 하다. 물론 지금도 우리의 천문학 수준은 세계 최고급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작 국민들은 별자리는커녕 동서남북도 잘 가리지 못한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가운데 도로의 ‘홀수 번호는 남북방향, 짝수 번호는 동서방향’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동서남북 방향을 알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이렇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도로나 지하철 망이 방향보다는 주로 지형에 맞추어 그때그때 짜깁기 식으로 건설된 데다가 안내시스템도 정작 방향을 가르쳐 주지 않고, 지명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인에게 길을 물으면 대부분 ‘큰 벽돌집을 끼고 좌회전해서 한참 가면 왼쪽으로 보인다’는 식으로 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도로 안내표지를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크게 만들지만 실용성이나 편리성은 크게 뒤질 수밖에 없다. 생활의 불편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돈만 낭비하는 꼴이다.  구미 도시는 도로망이 마치 바둑판처럼 정돈 돼 있어 시내 어디서나 도로명과 방향으로 길을 쉽게 찾는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올 때도 ‘무슨 길을 남쪽 방향으로 가려면 이곳으로 나가라‘ 는 식이다. 동서남북 방향을 함께 안내해주니 쉽게 찾아간다. 메시지가 단순하기 때문에 도로 안내표지가 클 필요도 없다. 지하철 노선 안내도 마찬가지다. 입구에서 해당 노선 이름에 북쪽 (Northbound) 혹은 남쪽(Southbound) 등의 방향을 함께 표기해 매우 간단히 안내 한다.  우리는 어떤가? 예를 들어 동내문역에서 1호선을 타고 시청을 가려면 [1호선 갈아타는 곳] 이라는 글자 밑에 [→청량리.소요산.인천.신창] 이라고 써있다. 이 사람이 시청과 청량리.소요산.인천.신창의 위치를 다 알기 전에는 이 안내표지는 오히려 혼동만 줄 뿐이다.  이 안내판은 결국 1호선으로 갈아타는 사람은 모두 이 → 화살표 방향으로 가라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1호선] 이라고 하면 충분할 것이다. 좀 더 친절하고 싶다면 [→1호선 양방향] 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가지도 않을 종점(예: 신창, 마천, 오이도, 장암 등)의 이름을 들어 혼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도로나 고속도로안내표지판도 손을 보아야 한다.  이제 와서 도로망을 격자형으로 고치자든가 교통 안내판을 구미식으로 다시 만들라고 주문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다. 대안을 찾아보자. 한 가지 방법은 방향 지시 화살표 스티커를 만들어 기존의 안내판에 추가하여 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방향만 알고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며 혹 외국인에게도 훨씬 쉽게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을 색깔로 구분하면 더욱 좋겠다. 예를 들어 녹색은 서쪽, 빨강은 북쪽으로 정하면 위의 표지판은  이나   처럼 되어 누구나 쉽게 방향을 식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내할 때도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서쪽으로 가라고 하든가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 북쪽으로 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도로안내표지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마침 올해부터 도로명 주소체제를 채택하였으니 어차피 교통안내표지를 전면적으로 개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모든 안내표지에 지명과 동서남북(東西南北) 방향을 함께 표기할 것을 적극 제안한다. 또 신설되는 도로, 지하철, 시가지 등에는 당연히 이런 방식의 안내표지를 설치하도록 하자. 이렇게 되면 모든 국민이 방향에 익숙해질 것이고, 다른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보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후진성을 하나씩 고치고 제거해나가는 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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