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 언론인 미안하다 얘들아. 참말로 미안하구나, 얘들아!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도 참담하고 부끄럽다. 채 피어보지도 못한 불과 열일곱 나이의 너희들이 겪고 있을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숨 막히는 고통을 안겨준 우리 어른들이 죄인이다. 너희들 앞에 무릎을 꿇고 천번 만번 머리를 조아린들 용서가 되겠니.또 이 세상의 그 어떤 말로 너희들이 마주하고 있는 죽음의 공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겠니. 한줄기 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 어둡고 차디찬 바다 속에서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 지금도 구조의 손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너희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차가운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를때 얼마나 무서웠니. 조금전까지만해도 재잘거리며 다정하게 지냈던 친구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는 또 얼마나 두려웠니.너무도 착하고 예쁜 우리 모두의 아들 딸들아. 어서 빨리 그 무섭고 깜깜한 곳에서 나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훌훌 털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와다오.어제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학교 다녀왔다며 현관문을 불쑥 열고 들어와 가방을 내던지고 엄마 품에 와락 안겨 주렴.사춘기 고교생의 억지와 투정도 엄마 아빠는 다 받아줄께. 중간고사 성적이 조금 나쁘게 나오면 어떠니. 공부 잘 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드는 옷 안 사준다고 삐쳐서 몇날 며칠 말도 안하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엄마 속을 긁어도 괜찮다. 친구와 싸워 맞고 들어와도 아니 몇 대 때리고 나서 학교에 불려가더라도 엄마 아빠는 늘 너희들 편이 돼줄께.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공부 안한다고 잔소리 안 할테니 그저 엄마 아빠 곁에만 있어주렴. 너희들 얼굴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고맙고 행복하단다.어서 빨리 돌아와 너희들이 지니고 있는 상큼하고 화사한 봄꽃같은 냄새를 맡게해다오.아니 시큼한 땀냄새면 또 어떠니 그저 너희들의 숨소리만이라도 들려다오. 얘들아, 너희들이 지금 겪고 있는 그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앞으로는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의 말은 믿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라.그리고 더 이상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착한 학생이라는 말도 앞으로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려무나.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다렸지만 결국 너희들을 그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그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라.내일이면 70을 바라보는 노선장은 자기만 살겠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자 같은 너희들을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쳐 나왔다. 이러고도 어른이라고 존경 받기를 기대한다면 참으로 뻔뻔하다.살려달라는 너희들의 외침과 비명을 뒤로 한 채 혼자 도망쳐 나와서는 주머니에서 젖은 돈을 꺼내 말리고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그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넘어 살의까지 느꼈단다.참으로 부끄럽구나 . 이 나라에서 어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어른들과 한 하늘 아래서 숨을 같이 쉬고 있다는 것이.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는 너희들을 빤히 바라보면서 모든 것 제쳐두고 구조에 나서기 보다는 오로지 변명과 핑계대기에 급급한 정부도 수준 미달에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너희들을 살릴 수 있는 절대절명의 기회를 놓치고 나서 뒤늦게 수십척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배를 띄워 구조에 나선다고 호들갑을 떨어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도대체 몇 명이나 배에 타고 있었는지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우왕좌왕 갈팡질팡 대며 구조과정에서도 온 갖 이유로 일관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과연 이들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맡아 지켜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자.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수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구나.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하고서는 뒤돌아서면 그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세월 가기만 기다리는 이들의 복지부동을 이번에는 절대로 그냥 넘기지 말자.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 막대한 예산들 들여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라고 간판을 바꾸어 단들 이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오늘의 불행한 일들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게다.지금부터 15년전 씨랜드 참사 당시 어린 자식을 화마에 빼앗긴 엄마는 얼마나 이 나라가 원망스러웠으면 이나라가 싫다며 훈장까지 반납한 채 이민을 갔을까.아직도 더 희생이 필요 한건지 아니면 얼마나 더 많은 댓가를 더 지불해야 이들이 변할려는지 모르겠구나. 왜 우리들은 원칙과 기본을 무시해서 빚어진 지난날 대참사에서 얻은 교훈을 금방 잊어버리는지 안타깝다.얘들아, 너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오늘의 이 잘못을 절대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아라. 다시는 이번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들이 시퍼렇게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봐다오.그리고 도대체 누가 너희들을 그 곳으로 보내 이 힘든 시간을 겪게 하는지 이번에는 반드시 알아내야겠다. 또 끝까지 책임을 물어 엄하게 벌을 주자.너희들이 차디찬 바닷속에서 떨고 있는 엿새 내내 애꿎은 술에게 화풀이를 해보지만 체한 것처럼 답답한 명치 끝은 끝내 먹먹하고 뚫리지가 않는구나.보고싶다 얘들아. 참말로 너희들이 보고싶다.우리 모두 죽을 때까지 너희들을 기억하마. 그리고 세월호를 잊지않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