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 / 언론인 물류(物流)혁명은 미국의 번영을 가져왔다. 독립 후 미국의 숙제는 자원도 노동력도 아니었다. 운송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효율적인 수송이 경쟁력을 가름했다. 마침내 해결사가 등장했다. 로버트 풀턴(Robert Fulton)이다. 풀턴은 나폴레옹에게 영국의 해군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바로 잠수함과 어뢰였다. 나폴레옹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풀턴은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증기기관을 선박에 적용했다. 사상 처음으로 증기선을 개발했다. 이 증기선의 시속은 5마일에도 못 미쳤다. 당연히 경제성은 떨어졌다. 하지만 개량을 거듭했다. 증기선은 물류 혁명을 일으켰다. 1800년만 해도 해상 수송비가 육상 수송비의 1/10에 불과했다. 증기선의 개량은 이런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1830년에는 해상 수송비가 육상 수송비의 1/40 수준으로 떨어졌다. 운송비 하락은 경제성장을 촉진했다. 1840년까지만 해도 영국과 미국의 성장률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1860년에는 미국의 성장률이 영국보다 두 배로 높아졌고, 1880년에는 그 차이가 세 배로 벌어졌다. 증기선의 연료비가 워낙 쌌기 때문이다. 증기선은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다. 미국은 나무천지였다. 곳곳에 나무가 널려 있었다. 증기선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증기선이 급증하자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인명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PS 제너럴 슬로컴(General Slocum)` 화재 사고는 그 중 최악이다. 슬로컴은 1904년 6월 15일 뉴욕 이스트강(East River)에서 화재로 침몰했다. 탑승자 1342명 가운데 102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성 마르코 루터교회 신도들이 배를 전세 내 소풍을 즐기다가 참화를 당했다. 화재가 일어났는데 대응도 늦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슬로컴의 발음에 빗대 "대응이 더디다(slow come)"고 비판하기도 했다. 슬로컴은 1891년 처녀 운항을 시작한 후 계속 사고를 냈다. 충돌 및 좌초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중상자 1명이 생기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발생하고, 이런 경상자가 생기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입을 뻔했던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에 달한다"는 하인리히법칙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건초더미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난 후 이내 페인트와 휘발유 보관창고로 번졌다. 선장은 불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도 "어린아이의 말"이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응도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선원들은 우왕좌왕했다. 제대로 화재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다. 소방 설비는 무용지물이었다. 소방 호수를 꺼내자 뚝뚝 끊어졌다. 한 번도 유지 보수한 적이 없어서 곳곳이 썩어 있었다. 구명정은 철사로 꽁꽁 묶여 있어서 풀어낼 수조차 없었다.어머니들은 서둘러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힌 후 강물로 던졌다. 하지만 물 위로 떠오르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구명조끼는 하나같이 불량품이었다. 교회 신도 대부분이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 죽었다. 섬뜩한 기시감이다. 슬로컴호와 세월호 사고는 마치 판박이같다. 해상 참사는 보통 부주의와 기상 악화가 결합해 만들어낸다. 하지만 슬로컴호 화재나 세월호 침몰은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돈 만 따지다 보니 소방 훈련이나 안전 교육은 외면했다. 안전 교육이 없으니 구명정이 작동하는지 여부도 확인할 리가 없다. 선장의 잘못으로 몰아가지만 그런 삼류(三流)는 누가 조종실에 앉혔나? 자긍심이 없으면 책임감도 떨어진다. 선장을 비롯해 상당수 선원을 계약직으로 채워놓고 배가 잘 굴러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요행일지도 모른다. `무늬만` 구명정을 갖춰 놓았는데 `이상 없다`고 판정한 것은 누구인가? 해운회사 회비로 먹고 사는 해운조합이 추상같이 해운회사를 감독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체가 코미디다. `규제 완화`라는 미명아래 노후 선박의 수명을 연장해 준 것은 누구인가? 자본만 배려했을 뿐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자본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탱크다. 목표는 끊임없는 증식이다. 안전이나 환경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만 횡행하는 곳은 삼류사회다. 삼류사회는 누가 만들었나? 우리다. 우리 모두가 참회록을 써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