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류(激流)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물살을 방해하면 그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작은 지푸라기는 물론 큰 바윗돌도 압도당하고 만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물살도 누그러진다. 그 때까지는 어느 것도 격류를 막지 못한다. 1793년 1월21일 월요일 아침. 파리의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회색 안개가 `혁명 광장`을 덮었다. 신(神)조차 끔찍한 광경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하느님만이 손댈 수 있는 왕을 처형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절대(絶對) 왕정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파리 시민들은 `루이 카페`를 단두대로 올려 보냈다. 그는 더 이상 루이 16세가 아니었다. 국민공회는 4개월 전 왕정을 폐지했다. 그래서 일반 백성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불렀다. 그는 국가에 모반을 꾀한 죄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민공회는 3일 전 표결을 통해 루이 16세의 사형을 결정했다. 찬성은 361표, 반대는 360표였다. 불과 한 표 차이로 사형을 확정했다. 혁명 주체 세력인 `상퀼로트`의 협박이 없었다면 루이 16세는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높았다. 상퀼로트는 "사형에 찬성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것"이라며 의원들을 협박했다. 루이 16세는 단두대 위에서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백성들이여, 나는 죄 없이 죽소! 나는 나를 죽게 한 주모자들을 용서하오. 나는 그대들이 흩뿌릴 피가 다시는 프랑스에 떨어지지 않기를 신께 기도하오."단두대의 칼날이 루이 16세의 목을 쳤다. 사형집행인은 왕의 머리를 흔들어댔다. 군중들은 왕의 피로 손수건을 적셨다. 그들은 붉게 물든 손수건을 승리의 깃발인양 마구 흔들었다. 이들은 "보통 사람의 피는 백성을 흐느끼게 하지만 왕의 피는 백성에게 위로가 된다"고 믿었다.신(神)은 루이 16세의 기도를 듣지 않았다. 이제 평범한 백성들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죽음의 신(神)은 작두질을 멈추지 않았다. 노트르담 지역의 빵 집 주인은 빵을 감췄다는 이유로 군중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그는 하루에 빵을 6번 이상 구웠지만 이런 사실은 철저히 무시됐다. 군중 가운데 한 명이 그를 `자유의 적(敵)`이라고 지목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광기와 증오가 팩트(fact)와 이성을 집어삼켰다. 증오는 세포분열을 부추겼다. 혁명 주체 세력은 다시 온건파와 강경파로 갈라졌다. 이들의 동지적 관계는 끝이 났다. 서로를 왕당파 이상으로 미워했다. 국민공회는 정국 주도 세력으로서의 힘을 상실했다. 소수의 선동가들이 국민공회를 무력화했다. 국민공회는 수동적 도구로 전락했다.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나라가 겉돌고 있다. 수사권 및 기소권 부여 문제가 쟁점이다.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는 `견제되지 않는 권력`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다. 언제든 적나라한 폭력으로 변이될 수 있다. 합리성을 상실한 폭력은 갈등, 반목, 적의를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더욱이 우리는 법치주의 의식이 약하다. 피해를 입으면 웬만한 일탈 행위는 용인될 수 있다고 여긴다. 부도난 회사의 기업어음을 팔았다는 이유로 증권사 직원의 뺨을 때리고, 무릎을 꿇린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당연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더라도 진상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유족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게 정치권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