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인 4일 남북간에 의미있는 일이 있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파격적 남한방문이다. 사전조율도 없었고 대통령 면담도 없었으며 김정은의 친서도 없었지만 남북간 고위급 접촉을 약속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연출만으로도 한반도의 암울한 분위기를 일소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대표단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를 명목으로 우리 측에 전격 파견함에 따라 최근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가 반전의 중대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대외적 명분은 스포츠행사 참석이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다음으로 북한 내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최고위급 인사들의 대거 방남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출범후 첫 최고위급 남북 접촉이란 점에서 일련의 접촉은 가볍게 평가할 성질이 아니다.그런 관점에서 이날 파견된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은 사실상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성격으로 보인다. 우리 측에 온 황병서는 군부 최고직위인 군총정치국장이면서 사실상 북한의 서열 2위 인물이고,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군복은 벗었지만 민간분야를 대표하는 실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대남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까지 합류하면서 명실상부한 ‘고위 대표단’을 꾸린 셈이 됐다. 북한 최고위급대표단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참가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당과 군부의 최고 실세들을 파견한 것은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를 내민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를 현 국면에서 충격요법을 통해 풀고자 하는 (북한의)메시지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정부쪽에서 청와대 예방 의사를 타진했으나, 북측이 시간관계상 이번엔 어렵다며 사실상 거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을 만나도 오찬회담에서 합의한 내용 이상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 예방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설득력이 모자란다.2차 남북 고위급접촉에 대해 북측이 남한이 편리한대로 하자고 한 것은 긍정적이다. 북측이 늘 예측 불허의 행동을 보여 온 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2차 접촉 준비와 함께 한층 강화된 대북 경계태세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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