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6일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불이 붙은 개헌론에 `개헌=블랙홀`이란 논리로 제동을 걸었다. 인화성이 큰 개헌 이슈를 잘못 꺼내들 경우 자칫 민생이나 남북관계 등 국정운영이 개헌론에 모조리 함몰돼버릴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상황 인식으로 풀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집권 2년차에 불과한 상황에서 개헌론이 본격화될 경우 자칫 레임덕 현상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정상화돼서 이제 민생법안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박 대통령은 "올해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국회도 경제살리기와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서 함께 힘을 모아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경제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모든 국정역량을 모아도 부족한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오히려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으니 국회도 이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의도에서 개헌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때마다 블랙홀에 빗대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야당 소속 상임위원회 간사들과의 만찬에서 "민생이 어렵고 남북관계도 어려운데 개헌을 논의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 (향후) 자연스레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정권 초 개헌론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올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개헌이라는 건 워낙 큰 이슈기 때문에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든다"며 개헌론을 일축했다.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어김없이 개헌을 블랙홀에 비유한 것은 정부가 경제와 민생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는 인식에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박 대통령은 MB 정부 말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지적되고 개헌 논의가 최대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지금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1월 기자회견에서 4년 중임제 등 개헌 문제가 대선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데 대해 "대통령 선거용의 정략적 접근이나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시한부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경제와 민생을 국정운영의 1순위에 올려 놓아야지 개헌에 우선순위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이때부터 완성이 돼 있던 셈이다.게다가 박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상황에서 벌써 개헌문제가 본격화된다면 자칫 정권운영에 있어 어려움에 직면하는 레임덕 현상이 초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박 대통령의 지적대로 개헌문제는 블랙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 탓에 정치권은 물론 국민 대다수도 이 논란에 빠져들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겨워 질 것이 뻔하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정치적 리스크가 큰 개헌문제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다만 박 대통령은 개헌 필요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서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제회복 골든타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국정 운영의 기틀을 확립하고 향후 개헌의 필요성이 정치권을 넘어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다면 그때 개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