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과 독설은 제아무리 맞는 말이고 남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안긴다고 해도 당사자의 가슴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 십상이다. 여북하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본전은 건진다."거나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했겠는가.
독설의 압권으로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버나드 쇼가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과 나눴다는 대화가 꼽힌다. "당신과 내가 결혼하면 우리 2세는 당신의 지성과 제 미모를 타고 나겠죠." "글쎄요. 못생긴 내 얼굴과 당신의 텅 빈 머리를 닮으면 어쩐답니까?" 버나드 쇼는 순발력 있는 독설로 좌중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자신의 독설에 만족했겠으나 치욕적인 모욕을 당한 이사도라 던컨은 어땠을까. 더 할 수 없는 한(恨)을 평생 안고 살지 않았을까.
최근 잘 나가는 사람들의 독설이 사회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10시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택시 한 대가 급정차했다. 고급 양복을 입은 40대 남성이 문을 벌컥 열고 나오더니 택시기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야, 이 개××야, 당장 내려!" 60대 택시 기사가 "몇 살인데 반말이냐. 부모도 없냐"고 하자 그 남자는 "그래 없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룹 부장이다"라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그야말로 회사 망칠 인간쓰레기다.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도경기장 VIP·선수전용 출입구에서 70대 남성이 노발대발했다. “여기선 내가 왕이다!” 스스로 `왕`이라고 말한 사람은 남종현(70) 대한유도회 회장이었다. 출입증이 없는 동반인 출입문제가 발단이다. 함께 온 지인 5명 중 3명은 출입증이 없었다. 안전요원의 제지에 왕이 분노했다. 지인들은 결국 임시출입증을 받아 경기장에 들어갔다. 그가 배울 것은 진정한 무술인은 강자 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약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김현 의원 차례다. 지난달 17일 자정. 서울 여의도에 콜을 받고 달려 온 대리기사 이모(52)씨가 30분을 기다렸지만 손님들은 떠날 생각을 않았다. 대리 운전기사가 지쳐서 가겠다고 말하자 김 의원이 소리쳤다. “`너 어디 가. 거기 안 서? 너 그 몇 분도 못 기다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현장을 목격한 행인들은 그 말이 떨어지자 일행 세 사람이 대리 운전기사의 목을 잡고 얼굴 옆구리 배 할 것 없이 때렸다고 한다.
김현 의원이 외교통상위 소속으로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 때의 일이다. 권영세 주중대사에게 "베이징 대사관의 외교부 출신 인사들은 인사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주재관)은 인사가 없었다."며 나중에 별도로 자기소개와 인사 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내가 누군지 알아!” 증후군이 발작한 모양이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가 누군지 알아?`는 단기간 명성을 얻거나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에게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제 가치는 높은데 명성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느낀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며 일반인과 구별 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내가 누군지 알아?`는 열등감의 그림자"라며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보통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이 기대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거 보잘것없었던 시절의 자신을 무시·멸시하던 타인을 떠올리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면 상무, 신문지 회장, 빵 회장 시리즈는 사회적 지위가 좀 높거나 재산이 많다고 남을 깔보려는 천박한 특권의식이 빚은 추태들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유명인일수록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삐뚤어진 특권의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밥상머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집안에 어른이 왜 있어야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주필 차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