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을 붙들고 스크랩을 뒤적인다. 무려 한 시간넘게 헤맨 끝에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을 찾았다. 때는 1982년. 정신병자가 청산가리를 타이레놀 캡슐에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 이것이 팔려 나가 여덟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약사는 존슨&존슨. 지금도 베이비로션으로 친숙한 기업이다. 존슨&존슨은 긴급 대응책으로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재고물량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유통된 타이레놀 총 3100만 병을 회수했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했다고 한다. 1982년 타이레놀은 진통제시장 점유율 37%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청산가리 살인사건직후 순식간에 7%로 주저앉았다. 존슨&존슨사의 대응은 회사브랜드파워와 제품의 이익을 해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지침은 소비자들을 먼저 보호하고 다음에 재산권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존슨&존슨의 과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모든 비용을 지불한 사실이다. 엄청난 출혈을 감수한 존슨&존슨의 대응은 매우 솔직하고 모범적이었다. 동서식품의 경우를 보자. 지난 13일 식약처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진천공장에서 이 제품을 생산하면서 자체 품질검사에서 대장균군(대장균과 비슷한 세균 집합)이 나온 제품을 폐기하지 않고 다른 제품들과 섞어 완제품을 만든 정황이 발견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장균군이 검출된 제품은 압류·폐기하고, 오염 제품이 다른 제품과 얼마나 섞여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 제품 전체의 유통·판매를 잠정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조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백 번 잘 한 일이다.그러나 동서식품의 반응은 달랐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반제품의 경우 대장균이 의심돼서 불합격하면 살균처리해서 쓰는 것은 정상적인 생산 공정”이라며 “대장균 같은 경우는 생활 도처에 엄청 많이 있다. 그런 것들에 (시리얼이) 오염됐다고 버리기엔 너무 많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 극히 일부만 독극물이 투입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불안을 덜기 위해 3100만병이라는 천문학적인 분량을 전량 회수해 폐기한 존슨&존슨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존슨&존슨은 언론에게 감추지 않고 모두 공개하면서 미디어와 완전 공조체제를 취했다. 나중에 존슨&존슨은 청산가리가 들어갔던 타이레놀 캡슐 제품을 모두 알약으로 교체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시 수백만 달러가 들어갔다. 엄청난 출혈을 감수하면서 고객의 신뢰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결과 독극물사건 이후 존슨&존슨의 매출은 8배나 더 뛰어 올랐다고 한다.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불량식품 척결’을 핵심공약으로 삼아 ‘4대악 척결’에 포함시켰고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도 “먹을거리를 갖고 장난치는 행위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공언했다. 식약처도 지난 해 불량식품을 제조·판매한 업체에 관련 매출액의 10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이익몰수제’ 등 척결 방안을 입법화할 것을 여러 차례 다짐했다. ‘매출액 10배 과징금’ 약속대로라면 웬만한 업체는 폐업할 정도이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동서식품에게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한다고 한다. 국민을 희롱하는가. 300만 원이면 재벌의 껌 값 수준이다. 이래서야 “먹을거리를 갖고 장난치는 행위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한 대통령의 엄포를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차욱환 본지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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