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억류 미국인 석방 후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북한은 억류된 미국인을 전격적으로 풀어준 만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철회하거나 문구를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결의안에 관한 입장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미국인 억류와 관련해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1일 `미국인범죄자석방과 조미관계의 향방`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임기의 마지막 국면에서 정보기관의 최고수장을 평양에 파견한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와 각오는 앞으로 미국이 취하게 되는 행동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조선신보는 이어 "최고영도자에게 친서를 보낸 것을 진지한 대화의 새로운 기점으로 삼으려 한다면 조선측은 호응할 것이지만 과거처럼 자기가 한말을 뒤집고 대결구도의 유지를 꾀한다면 퇴임 후 그에게는 조선문제를 완전히 망친 대통령이란 낙인이 찍히게 된다"고 경고했다.이외에도 북한은 여러 매체를 통해 대미 압박 공세를 이어갔다.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논평에서 미군 군사훈련을 문제삼으며 "미국이 첨단무기들을 개발하면서 여전히 세계를 제패해보겠다고 날 뛰는 것은 멸망해가는 자의 최후발악에 불과하다. 미제의 무모한 전쟁장비개발책동은 국제무대에서 군사적대결과 충돌을 부채질하고 국제정세를 긴장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이날 논평에서 "하루가 멀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서의 총기류 범죄는 이 나라가 세계에서 사람들이 살기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며 "이런 살인왕국이 인권에 대해 떠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북한의 이 같은 공세에도 미국은 김정은의 ICC 제소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CNN방송에 출연해 "억류 미국인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지급한 대가는 없다. 이번 일은 북한과의 협상이나 외교적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의 암울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 또 북한의 핵개발 야욕과 그 능력에 대한 우려는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고 밝혔다.이 발언은 북한인권결의안에 관한 미국정부의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면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로베르타 코헨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유엔 회원국들의 환심을 사려는 속셈"며 "유엔총회 제3위원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회원국들에게 북한은 `억류 미국인도 풀어주고 인권을 생각하는 나라이니 결의안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미국 터프츠 대학의 이성윤 교수도 "북한이 억류 미국인 석방으로 국제사회의 기준에 순응하는 것처럼 행동한 후에도 국제사회가 인권 문제로 압박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억지 주장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처럼 양측이 신경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인 석방으로 인한 북미간 화해 분위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억류 미국인 석방에 관해 "북한이 다각도로 대외적 고립에서 탈피하려 노력하는 듯하다"며 "미국 억류자 석방으로 미국정부에 (모종의)신호를 보낸 듯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박 위원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북핵문제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미국이 양보할 여지가 없어졌다"며 "미국의 지금까지 태도를 볼 때 북미간 대화 진전은 어려운 환경"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