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혼자 라면을 끓인다 / 한평 남짓한 좁은 경비실에 앉아 /입을 벌리고 졸다가 일어나 / 끓인 라면을 혼자 먹는다…“(정호승)지난달 7일 오전 9시 10분경, 서울의 최고급 동네로 불리는 강남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이 모 씨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전신 60%에 3도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 한 달간 투병 끝에 사망했다.57세의 경비원을 분신자살로 몰고 간 내막은 일부 입주민의 인간이하 대우 때문이었다. 전신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다가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마귀할멈, 악마’ 등 특정인물을 지목한 말을 쏟아냈다. 73세의 여성 입주민, 소위 ‘사모님’이었다. 동료 경비원들도 “평소 사모님이 폭언을 하고, 5층에서 떡을 던지며 “경비, 이거 먹어”라고 하는 등 경비원들에게 모멸감을 줬다”고 증언했다. 그날 아침에도 사모님이 이 씨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목격한 경비원도 있다고 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더니, 경비원의 한(恨)을 풀어 줄 사람은 역시 경비원뿐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뒤바뀌었다.우선 경찰과 아파트 관계자들이 언론에 보도된 것과 진실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주변 CCTV 화면을 근거로 문제의 입주민 여성이 당일 아침 문제의 초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기사가 오보라고 했다. 주민들 역시 그 사모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며 말을 뒤집었다. 게다가 그가 던진 떡을 받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던 동료 경비원조차 갑자기 자신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며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당초 억울한 죽음 탓에 이 씨의 장례식을 무기 연기하기로 예정했었다. 그러나 10일 오후 문제의 사모님이 이 씨의 빈소를 찾아가 사과를 하면서 5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사건 당일 이 씨를 찾아 간 적도 없다고 딱 잡아떼던 사모님은 이 씨의 영정 앞에서 “아저씨 미안해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하며 통곡했다. 이 씨의 부인은 그녀에게 “앞으로는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잘 좀 해주시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입주자대표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입주자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고 확정된 사실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대표자회의에서 사과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업체가 인사관리를 잘 했다면 이런 사고가 안 났을 것”이라며 오히려 책임을 경비업체에 떠넘기는 재치를 발휘했다. 그리고 30년 이상 이 아파트의 경비업무를 맡아온 헤딩 경비업체와 더 이상 연장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갑(甲)질’ 근성의 대표적 사례다.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2013년)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적어도 3명(35.1%)이 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실도 입주민들로부터 경비원이 폭행·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매년 급증한다고 밝혔다. 주당 평균 61.8시간의 격무와 박봉도 모자라 비인격적 대우까지 합세해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근로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민원 들어오면 근로계약 해지할 수 있다’, ‘절대로 회사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못한다’, ‘해고 예고 없이 퇴직 명령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페이스북에 분신자살한 경비원의 명복을 비는 글을 올린 파격에서 따스한 정을 느끼지만 근로계약서의 독소조항을 깨끗이 정리해 준다면 전국의 경비원들에게 정말 감격스러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경비원들이 비인권적 처사에 제대로 항의도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다. 대리 주차, 택배배달, 쓰레기 분리수거 등 입주민들의 개인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경비원들의 힘겨운 삶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지고 있다. 차 욱 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