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공과금과 함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 아홉달 만인 11월 17일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워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밤을 낮삼아 부지런히 토론하고 협상해서 통과시켜야 하지만 밀고 당기며 게으름을 피운 탓에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이 곳 저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겨우 1가 관문을 통과한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10월 30일. 세상사람들이 이른 단풍놀이에 나설 때 지난달 30일 오전 11시50분쯤 인천 남구 한 빌라에서 이모씨와 부인 김모씨, 중학교 1학년 딸 등 3명이 숨진채 발견됐다. 딸은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죽는다”는 유서를 남겼고 김씨는 “언제나 돈이 없다. 마이너스 인생이다. 마이너스는 늘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추한 꼴 보기 전에 먼저 간다”면서 “혹시라도 우리가 살아서 발견된다면 응급처치는 하지 말고 그냥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편지를 남편에게 남겼고 뒤늦게 시신을 발견한 남편 또한 자살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또다시 홀로 살던 노인이 목숨을 끊었다. 서울 장안동 한 주택에 세 들어 살던 노인이 집이 팔려 방을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이자 목을 맸다. 그는 퇴거작업을 온 SH공사 직원 앞으로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고 적은 쪽지와 10만 원 가량의 현금을 남겼다. 그 외에도 전기ㆍ수도요금 고지서와 이를 지불할 돈, 자신의 장례비로 추정되는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68년간 머문 세상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빚에 몰려 더 이상 비켜 설 곳 없는 일가족과 공사장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 갈 곳이 없이 죽음을 택한 그 처연함이 가슴을 아리게 했지만 눈물겨운 사연들은 한 유명가수의 죽음에 가려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날마다 텔레비전은 유명가수의 죽음을 놓고 국가적 변고라도 생긴 것처럼 떠들었고 다큐까지 쏟아져 나올 만큼 극성스러웠다. 같은 죽음이라도 한 세상 화려하게 살다 간 사람에게 세속은 더 유난을 떨었다.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뒤 또 미적거리고 있는 ‘세 모녀법’을 놓고 걱정들이 많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분노를 자아낼 때 새정치민주연합 탄생 1호 법안으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발의했다. 2000년 10월 기초생보제 시행 이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을 이 법이 14년 만에 바꾸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세 모녀 법’(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논의의 최대 쟁점은 독소조항으로 꼽혀 온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정부ㆍ여당은 수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자의 소득ㆍ재산 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85%(302만 원)로 높여 12만 명을 추가로 지원하는 안을 제시했고, 야당은 13만6000명 추가 지원이 가능한 수준으로 더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매듭짓던 법 개정 이후에도 100만 명이 넘는 빈곤층이 부양의무제로 인해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는 점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지 않는지 염려된다.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월 소득은 51만9200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월 60만3403원)는 물론 수급자의 평균소득(54만6800원)보다 훨씬 적다. 최근 1년간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거나 겨울에 난방을 못한 적이 있다는 사람이 각각 19.9%, 36.8%로, 이 역시 수급자(11.1%, 25.3%)보다 많다는 사실을 무시해도 좋을 것인가.더욱 충격적인 것은 현재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송파 세 모녀가 살아 있을 경우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불교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지적이다. 확인해보기 바란다. 사실이라면 법안을 즉시 수정해야 한다. 제2, 제3의 ‘세 모녀’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정성껏 다듬어야 한다.차욱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