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소치올림픽 개막식 참석으로 상징되었던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의 역사는 10월에 있었던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 ‘포베다(승리)’ 착공식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이제는 북·러 양국 정상회담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러시아는 2012년 시작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2기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는 등 이른바 신동방정책을 장기적인 국가 발전 방향으로 설정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있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 서방과의 갈등 국면과 계속되는 경제제재의 영향은 러시아로 하여금 중국 북한 등과의 협력관계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북한과 그 동안 전통적인 우호 관계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대북 정치, 경제 관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중국은 북한의 계속된 핵개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인 후원자 역할을 맡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의 거의 유일한 무역 상대국이고 북한 투자 외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반면 러시아는 구소련이 무너지고 대 한반도 정책이 한국 중심으로 급선회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과는 정치·경제 관계가 수교 이후 괄목할 정도로 향상되었지만 북한과는 그동안 형식적인 외교 관계를 갖는데 그치고 있었다. 북·러 양국의 경제관계도 무역 거래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일 정도로 거의 무시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과의 관계 단절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로 이어졌다.지금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세력 균형과 러시아 극동 지역의 경제 개발을 위해서 북한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정학적 결론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입장은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러 양국의 정치 관계 및 통상 관계 협력의 심화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지역 안보, 안정의 강화에 부합한다”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러시아는 2000년대 초부터 남·북·러가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합작사업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추진 의사를 계속해서 밝혀 왔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사업의 실제적인 수행은 남북한 양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 변화와 남북 관계의 불안정성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장애를 겪어왔다. 특히 2010년 천암함 사태 이후에 발표된 한국의 5·24조치와 북한의 핵실험 등에 기인한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남·북·러 협력사업들은 답보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북한은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를 줄여야 할 정책적 필요가 있었다. 남북 관계가 막혀 있는 현 상태에서 중국 외에 주변국가 중에서 또 다른 정치·경제적 협력 파트너를 만들어내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강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컸다. 이는 러시아 당국자가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의 명칭을 ‘포베다(승리)’라고 명명한 이유를 “북한에서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한 국가들 간의 경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더욱 중요한 논점은 러시아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한국도 추후 참여를 요청해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최근 한국에서 나진-하산 철도와 운송을 총괄하는 북·러 간 합작회사인 ‘나선콘트란스’의 러시아측 지분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논의를 하는 것 등으로 미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진 분석으로 볼 수 있다.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 박사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