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禮記) 단궁편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춘추시대 말엽, 공자가 문생(門生)들을 거느리고 수레를 탄 채 태산 기슭을 지날 때였다. 깊은 산골짜기인지라 사방이 고요한데 어디선가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와 살펴보니 앞 쪽에 있는 무덤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 일행은 급히 수레를 몰아 달려가서, 제자인 자로(子路)로 하여금 그 사연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가보니 여인은 세 개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있기에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하기를, “이곳은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옛날 사부님이 호랑이에게 여기서 물려 가셨고, 이어 남편과 자식이 모두 물려 죽었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자로가 다시 묻기를 “그럼 그렇게 무서운 이곳을 왜 떠나지 않으시오?” 하고 물으니 여인이 대답하길, “그 까닭은 여기는 그래도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거나 부역을 강요당하는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하길 “제자들아 잘 기억하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니라.”라고. 가정맹호(苛政猛虎)의 고사이다.최근 정치권 복지-증세 논쟁이 백가쟁명 모양 시끌벅적하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새로 뽑힌 유승민 원내대표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했다. 그러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야 정치권과 국민적 합의가 만들어지면 재원조달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정책기조다. 지난 대선에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를 공약하면서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그런 원칙에 따라 2013년 5월 134조원이 소요되는 140개 국정과제를 내놓았다. 소요재원은 세수확충, 세출구조조정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게 좌초 중이다.‘국민적 합의’는 정치적 수식어일 뿐 국회가 핵심이다. 그렇게 되면 증세는 일사천리다. 증세로 돈줄이 확 뚫리는데 정부가 싫어할 리 있겠는가. 증세를 해야 하는데 ‘증세없는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내 건 현 정권으로선 정치권의 강압에 의해 공약을 어기게 되는 형국이니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그러나 복지와 증세 논쟁이 접점을 찾기까지는 갈 길이 험난하다. 여ㆍ야의 생각이 달라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조세개혁의 큰 줄기가 될 증세와 관련해 법인세도 건드릴 것인지에 대해 여당 안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김무성 대표는 ‘복지지출 구조조정’에 방점을 둔 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중부담-중복지를 위한 증세 불가피론’ 쪽이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하자, 김 대표가 “법인세 인상은 제일 마지막에 할 일”이라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복지제도 전부를 싸잡아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하던 소모적 논쟁이 재연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 와중에 느긋한 사람은 공을 국회에 떠넘긴 최경환 부총리뿐이다.만약 증세를 하더라도 서민증세가 될까 두렵다. 솔직히 말해보자. 서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담뱃값인상이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였던가. 증세용은 아니었던가. 2012년 1127만건에 불과했던 교통과태료, 범칙금 징수건수가 작년엔 1456만건으로 그 전해보다 328만건 증가해 징수액이 2년 새 29.3%나 폭증한 것, 특히 범칙금이 부과되는 현장 교통단속이 2012년 163만건에서 작년 한해 351만건으로 3배나 증가한 것 등이 근본적으로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쉽게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간접세와 목적세의 유혹에서 벗어나 조세평등주의에 입각해 직접세 위주로 조세 부담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서민들이 세금 등쌀에 주눅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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