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선비인 조준대감의 동생인 조윤이라는 선비는 조정의 불의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본인의 이름을 조견(犬)이라 고치고 공직을 사직하고, 산 속의 은둔생활을 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요즘 공직자의 모습은 헌법상 보장된 인간으로서 기본적 존엄과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할 때도 있는 듯하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공직자의 일부가 부패 하였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공직자는 나름대로 고등교육 이상을 받고 그토록 어렵다는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그간 박봉이나마 국민의 봉사자라는 공복의식으로 만족하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 공직자들은 전 세계에서 43위의 부패한 나라라는 수치스러운 나라의 공직자가 되었고, 국민의 봉사자가 아닌 국민으로부터의 질책과 채찍질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국가로부터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눈물이 앞을 가리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부패한 공무원을 나무라기에 앞서 건국이후 오늘까지 유수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 참신하고 순진하였던 공직자들을 수치스럽게 해놓은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그렇게 더럽혀진 공직자로부터의 혜택은 누가 받았으며, 그 책임은 어느 누구에게 있는지 이 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홍익인간이념을 근간삼아 백성의 안위에 그 구심점을 두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백성은 시민으로 바뀌었으며 관(官)은 공무원(公務員)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관(官)이 ‘통치’에 기반을 둔, 백성 위의 존재 혹은 백성을 관리하는 개념이었다면, 오늘날의 공무원(公務員)은 ‘봉사 및 서비스’에 기반을 둔 시민을 위한 존재로 그 의미가 변화한 것을 뜻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렴(淸廉)이다. 관(官)이 공무원(公務員)으로 바뀌었을지언정, 그 본질적인 가치는 몇 천(千)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그 빛을 발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에는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정보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우리 공직자들의 행동은 언론이나 매체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으며, 시민이라는 심판관(審判官)에 의해 그 옳고 그름을 평가받는다. 그 평가의 잣대는 무엇일까? 기업윤리의 정과 당의 기준이 영리(營利)라면, 우리 공직자의 정과 당의 기준은 바로 청렴이다. 우리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에 있어서 그 어떤 기준보다도 우선시해야 하며,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덕목인 것이다.시민과 공직자 이들은 모두 인간이다. 인간의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이기에 우리는 청렴이라는 딜레마를 갖게 된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주체이기에, 관계 속에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 우리이기에 그 중간에서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것을 요구받는 것이 바로 우리 공직자이며 청렴과 함께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