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오다 자살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리스트’ 메모가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검찰이 좌고우면(左顧右眄) 대신 수사의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온 인물의 상당수가 친박계 실세이거나 유력 중진급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 착수는 벌서부터 만만찮은 파장을 낳고 있다.수사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생물’로 비유하는 만큼 사정(司正)의 칼날이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올라가 박근혜 정권의 심장부를 겨눠야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뇌물 공여자가 사망한데다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어 섣불리 수사 전망을 낙관하기도 쉽진 않다.▣ 수사 착수 배경은…검찰 수뇌부가 12일 수사팀 구성 등 신속한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갈수록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쟁점화되면서 정쟁의 대상으로 달아오를 경우 현 정권에 악재로 작용하는 측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만약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고 의혹을 덮고 갈 경우 오히려 잡음만 가중시켜 집권 중반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남은 기간 국정 장악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사회적인 혼란고 국론 분열만 불러일으킬수 있다.여기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계 뿐만 아니라 여당 수장이 공개적으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수사의 명분을 깔아준 측면도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수사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검찰 수뇌부가 이를 무시하긴 힘들다는 것이다.다른 한편에서는 검찰로서도 전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허태열·김기춘 전 청와대 실장을 비롯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등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제외하면 친박(親朴)계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검찰이 현 정권에서는 친박계 실세들을 겨냥하진 못하더라도 이번 수사 과정에서 친박계 관련 첩보나 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할 경우 앞으로 검찰의 입지를 다지는 ‘카드’로 쓸 수 있다.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前)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司正)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검찰로서는 미리 ‘탄약’을 쌓아놓고 존립 기반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이번 수사를 잘 마무리짓고 많은 정보를 갖게 된다면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군데에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언론보도 상황, 정치권 움직임, 국민들 관심을 고려해야 될 요소겠지만 (수사 착수를 결정하는데)절대적인 영향력은 아니다”고 말했다.▣ 수사 대상·전망은… 검찰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 메모지에서 이름과 금액이 함께 기재된 허태열(전 청와대 비서실장·7억원), 홍문종(새누리당 국회의원·2억원), 유정복(인천시장·3억원), 홍준표(경남지사·1억원), 김기춘(전 청와대 비서실장·10만불), 부산시장(성명 미기재·2억원) 등 6명이 우선순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름만 기재돼있을 뿐 구체적인 돈의 액수나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 일단 후순위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김 전 실장은 2006년 미화 10만 달러를 자신에게 건넸다고 폭로한 데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아주 악의적이고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부인하고 있고, 홍 의원도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황당 무계한 소설”이라고 일축하는 등 리스트에 올라온 전원이 금품수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다만 홍 지사의 측근 윤모씨는 “(성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 말씀하신 마당에 (내가)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간접적으로 시인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검찰은 성 전 회장이 생전에 남긴 메모지와 휴대전화 등에 대한 감정·분석결과가 나오는대로 구체적인 수사의 밑그림을 짜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기초 자료 수집·분석을 토대로 성 전 회장과 리스트에 거론되는 인사들간 실제로 금전거래가 있었는지를 먼저 규명한 후 돈의 성격이나 대가성 여부에 대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이와 관련,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는 성 전 회장의 메모에 쓰인 필적 감정과 성 전 회장이 쓰던 폴더형 휴대전화 2대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쓰던 휴대전화는 자동으로 통화 내용을 저장하는 기능을 갖춘 것으로 전해져 금품이 오고간 시점이나 정황, 금품의 전달 과정 등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검찰은 더불어 성 전 회장의 장례 절차를 마치는대로 유가족과 경남기업 임직원에게 관련 자료를 갖고 있는지, 갖고 있다면 제출할 수 있는지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또 이날 경향신문사에 요청한 녹취파일을 제출받는 대로 수사의 단서로 활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볼 계획이다.▣ 친박 외 다른 여·야 인사들도 불똥 튀나?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의 가족이나 경남기업 임직원 등 금품전달에 관여한 주변 인물을 통해 신빙성 있는 진술을 이끌어내거나 정관계 로비 명단이 담긴 장부를 발견할 경우 수사가 더욱 탄력받을 수도 있다.성 전 회장이 생전에 여야 정당을 가리지 않고 정관계 인사들을 관리해온 ‘마당발’ 인맥으로 유명한 만큼 여당 내 친박계뿐만 아니라 친이계나 다른 야권 인사들에게도 수사의 파장이 커질 수 있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의 사람 관리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성 전 회장)한테서 돈을 못 받으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며 “여당 뿐만 아니라 야당에도 성 전 회장의 돈을 받은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성 전 회장이 메모에 적힌 인사들에게 건넨 금품이 정치자금으로 판명날 경우 정치자금법을 적용할 수 있다.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입증돼 뇌물로 규정될 경우에도 사법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반면 금품을 건넨 공여자가 사망하고 금품 수수을 받는 관련자들이 모두 의혹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물적 증거 수집이 여의치 않을 경우 검찰의 수사가 난관에 빠질 공산이 크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수사팀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의혹사항을 수사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결국 법리 문제, 증거법적 문제 이런 토대 위에서 (수사방향)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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