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이 맞다. 작년에는 세월호가 3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 가더니 올해는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마구 휘젓고 있다. 죽은 성완종이 산 사람의 팔목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밤 잠을 설치고 봄꿈이 아닌 교도소 갈 꿈을 꾸느라 식은 땀을 흘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돈 때문이다.조선시대 홍기섭이 젊었을 때 몹씨 가난했다. 하루는 어린 계집종이 뛰어 와서 돈 일곱 냥을 바치며 “이것이 솥 속에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쌀이 몇 섬이요, 나무가 몇 바리입니다. 참으로 하늘이 주신 듯 합니다”라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자 홍공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곡절이 있는 돈일 것이니 주인이 찾아 올 때까지 손도 대지 말도록 하라” 하고서는 “돈 잃은 사람은 와서 찾아가시오”라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얼마 후 유씨 성을 쓰는 이가 찾아 와서 글 뜻을 묻기에 사실을 들려줬다. 그러자 유씨가 “남의 집 솥 안에다 돈을 잃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참말로 하늘이 준 것인데 왜 취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홍공은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 내가 가질 것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유씨가 꿇어 엎드리며 말했다.”소인이 어젯밤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 가세가 너무 쓸쓸함을 애타게 여겨 오히려 훔친 돈을 놓고 갔습니다. 지금 공의 성정이 고결하며 탐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을 보고 탄복해 좋은 마음이 스스로 나서 앞으로 도둑질을 그칠 것을 맹세합니다. 늘 옆에 모시기를 원하오니 걱정 마시고 취하기를 바랍니다.” 홍공이 돈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그대가 마음을 고쳐 좋은 사람이 된 것은 참 좋으나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므로 취할 수 없소이다”하고 끝내 받지 않았다. 뒤에 홍기섭은 벼슬이 판서에까지 이르게 되고 아들이 현종의 부원군이 됐다.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의 금품 전달 리스트가 메가톤급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친 박근혜계 실세 정치인들에게 거액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론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무계한 소설이라며 펄쩍 뛰고 있고 심지어 이완구 총리의 경우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한다. 성완종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적수공권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서른 살 전에 충청권 도급 순위 3위 건설 업체를 인수했고 2003년엔 대우그룹 계열사 경남기업을 사들여 대기업 반열에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정치권 에 관심이 많은 것이 탈이었다. 서른 갓 넘은 1980년대 초반 이미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 재정위원을 했고 JC(청년회의소) 활동도 시작했다. 그는 본래 학연이나 지연이 없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사람이지만 금연(金緣)으로 인맥을 쌓았다. 돈이 미끼였고 정치인들은 그 미끼를 의심 없이 잘도 물어 주었다. 그 결과 ‘정치권에 성회장의 돈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돈을 뿌리고 다녔다.그의 유서와 녹음의 진실성여부가 논란의 중심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이다. ‘새는 죽을 때가 되면 그 소리가 애절해지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착하다’.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이다. 사람이 죽음에 임하거나 극한의 고통에 놓였을 때 하는 말은 진실하다는 의미다. 그런 탓에 억울함을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말은 그만큼 간절하게 가슴에 와 닿게 된다.성완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도움을 청했다가 실패하자 박근혜정부의 실세들에게 주었다는 뇌물 액수를 적은 메모를 남겼고 언론사 간부에게 내용을 실토했다. 배신에 대한 증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소용없는 말이지만 그가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엄청난 돈을 불우한 학생들에게 투자하며 기업경영에 전념했다면 충청도의 큰 인물로 길이 남았을 것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개같이 벌더라도 정승처럼 쓰라고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