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남북 군사당국회담·적십자회담을 제의한 데 대해 미국과 일본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유감천만한 일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7일 회담 제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충족돼야 할 조건들이 현 위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금은 압력을 가할 때”라며 “이달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지금은 압력을 가할 때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역시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우리 정부의 남북회담 제의에 미·일이 시기상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한·미·일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이번 제안에 대해 미국 등 주요국들에 사전에 설명한 바 있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국들이)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렇지만 미-일의 반응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와 아베 총리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지난 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이후 미국은 대북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 하원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방조하는 중국 통신기업을 제재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국제사회가 압박을 강화해 가고 있는 시점에 문재인정부의 남북 대화 추진이 어깃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양국 정상은 남북 대화의 조건을 ‘올바른 여건’으로 합의한 점에서도 거리가 있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는데도 남북 대화를 제안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와 교류를 강조한 베를린 선언을 주창하면서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최대한의 압박’에 합의하는 성명을 낸 것은 국제사회의 기조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미일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우리정부가 일탈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남북대화는 국제공조의 틀 내에서 이뤄져야 동맹국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문 정부가 ‘올바른 여건’을 내세우면서도 대북 대화에 연연한다면 한·미 엇박자와 국제 공조약화를 자초하게 된다. 정부는 너무 조급하게 굴어선 안 된다. 회담자체에 매달리다 보면 남북대화 주도권을 북한에 빼앗기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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