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경험주의 철학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우파 이념의 학습도 다양한 영역에서 우파들이 쌓아온 가치 있는 경험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우파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이념적 주제보다는 실제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고도화된 이론적 이념적 체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핵심은 일상 속에서 정치토론을 조직화, 체계화하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달리 대중은 실생활에서 직접 부딪히는 이슈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역의 이슈를 정치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토론이 장기 전망 위에서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토론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우파의 이념 자체가 장기적인 경험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토론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은 정당뿐이다. 정당은 이념 결사 자체이기 때문에 그런 토론을 이끌 자원을 보유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토론의 당사자는 당원이며, 토론 주제는 모든 당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핵심 관심사인 공직선거 후보 공천이어야 한다. 바로 이 공직선거 후보 공천을 놓고 이뤄지는 토론이 우파의 진짜 정치학습이다. 여기에는 커리큘럼도 강사도 필요없다. 공천을 받고자 하는 당원의 정견 발표와 거기에 대한 당원들의 질의응답 그리고 철저하게 민주주의 일반원칙에 근거한 투표만이 중요하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의 지도부를 선임하는 투표도 마찬가지다.
이 토론 과정에서 정당의 이념과 정치적 가치관이 경험의 공유라는 방식으로 당원들에게 전파된다. 직업 정치인이나 선배 당원들의 축적된 경험이 평범한 당원들에게 전달되어 당원 전체의 역량을 키우고 이들 가운데서 공직선거 후보 등 직업 정치인을 배양하는 밭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당원의 자격이다. 공직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토론과 투표에 참가할 당원의 자격 문제는 이 토론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이다. 매월 당비 1만원 이상 납부하는 진성 당원에게 권리와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당에 대한 이 정도 참여와 애정이 없으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악질 분자가 당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것도 막기 어렵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되는 자격기준은 현재 매월 당비 1천원 납부이다. 이 정도 당비를 내는 당원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매월 당비 1만원이라고 하면 비현실적인 이상론이라고 느끼기 쉽다. 당원들의 심리적 저항감도 무척 강하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만원이라면 두 사람이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금액이고, 점심 한 끼 식사비용이다. 소규모 친목모임에서도 월 1만원 회비는 그다지 드물지 않다. 정당은 시민들의 현실 참여 활동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결단과 훈련을 요구한다. 엄밀히 말해 월 1만원 당비가 부담스러워서 못 내겠다는 당원은 거의 없다. 당원들이 월 1만원 당비도 내기 아까워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금 국민의힘 열성당원들은 특정 정치인의 개인적 추종자인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 당원이라기보다 특정 정치인의 조직원으로서 일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받으며 일해도 부족할 판에 엉뚱하게 당비를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설혹 자기 돈을 낸다 해도 그 돈은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위해 써야 한다고 여긴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당비 1만원을 내게 만들러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만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 무슨 이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격을 갖춘 당원으로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공직선거 후보로 내보내는 권리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문제는 우파 정당의 고질적인 리더십 부재 문제와 이어져 있다. 정치는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우파는 계속해서 리더십 창출에 실패해왔다. 탄핵과 전국규모 선거 4연패라는 충격적인 기록은 우파가 정치투쟁을 승리로 이끌 리더십을 만드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처: 펜앤드마이크><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