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교훈도 잊을 수 없다. 미군은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베트남을 떠나면서 항공기, 전차, 소총 등 무수한 군사장비들을 남베트남군에게 남겨주었지만, 1975년 북베트남군이 남침을 재개했을 때 이 장비들은 무용지물이었다. 남베트남군의 조종사들이 도주함에 따라 전투기들은 이륙하지도 못했고, 지상군은 총포들과 군복을 길가에 벗어둔채 팬티바람으로 도주했으며,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제 전차들을 타고 사이공 시내로 진주했다. 남침 개시 56일 만에 남베트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베트남은 ‘죽음의 산야(killing field)로 돌변했다. 해외 탈출을 위해 조각배에 몸을 실었던 보트피플의 상당수는 육지를 밟아보지 못한 채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요컨대, 첨단무기나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며, 정예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방심과 이완을 초래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빈발하는 군내 성추행, 상관 폭행, 무단 군무이탈, 훈련 축소, 군 인권 신장을 빌미로 하는 외부세력의 군 흔들기 등이 군의 유약화를 부추기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럽다. 장병들의 인권과 복지를 확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군기 이완, 계급 간 명령체계 파괴, 훈련 약화, 성도덕 문란 등을 수반하는 복지 증진은 정예화가 아니다.
세계적 추세라는 이유로 모병제를 주장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최근까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채택한 나라가 80개국이 넘고 앞으로도 모병제 국가가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안보가 취약한 고위험군 국가들을 포함하여 아직도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많다.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전투병은 2년 8개월 그리고 여자 비전투병력은 2년을 복무한다. 대만은 고위험군 국가이면서도 최근 모병제로 전환했다. 중국 위협을 고려하면 대만이 징병제를 포기한 것은 의외이지만, 위험부담은 대만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고위험군 국가인 한국에게 있어 모병제는 먼 미래의 선택이다. 대만도 모병제를 하니 우리도 하자는 주장은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논리와 같다.
▣‘병사봉급 200만원’이라는 국방포퓰리즘
징병제 하에서 병장의 봉급을 월 20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발언은 포퓰리즘 중에서도 압권이다. ‘무전(無錢)입대 유전(有錢)면제’가 초래되고 ‘흙수저 군대’가 되어 위화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 등을 차치하더라도, 재정적 타당성을 고려한 것인지부터가 의문스럽다. 한국군의 경우 이등병 51만원, 일등병 55만 원, 상등병 61만 원, 병장 68만 원 등으로 병사 한 사람이 받는 평균 월급은 58만 7천 원으로 다른 징병제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병사 숫자를 35만명으로 가정할 때 매년 2조46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며 병장의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릴 경우 병사 일인당 평균 월급은 180만원이 되어 7조5600억원이 소요된다. 중간 호봉 소위의 월급은 190만원이고 하사는 180만원인데, 병사들의 봉급이 오르면 초급 간부들의 봉급도 높아져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감안한다면, 약 10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이 국방예산의 건강성을 훼손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2022년도 국방예산 54조6112억원 중 30.45%인 16조6917억원이 전력증강 사업에 사용될 방위력개선비이며, 나머지 69.43%(약 38조)는 병력운영(22조)과 전력유지(16조)를 위해 쓰는 전력운용비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방비에서 방위력개선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정부 동안 방위력개선비의 비중은 미미하게나마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역행 현상을 보인다. 2022년 국방비는 전년 대비 3.4% 증가했지만 방위력개선비는 오히려 1.8% 감소했다. 반면, 고정비에 해당하는 전력운용비는 5.8%가 늘어났으며, 특히 병사 봉급(11%), 장병 보건복지비(58%), 급식·피복비(9.2%) 등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국방예산의 건강성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일각에서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인기영합 정책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