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표기법  외래어표기법이란 이름은 일본에서 배워 온 것 같습니다.  모두 50개의 음절로 이뤄진 일본 문자로는 외국어 발음을 비슷하게나마 흉내 내 표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외국어는 아예 그들이 통상 쓰는 ‘히라가나’가 아닌 ‘가타카나’로 표기해 구별합니다. 다시 말해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표기한다’가 일본 외래어표기법의 기본 조항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외래어는 우리처럼 자국어가 된 어휘가 아니라 모든 외국어를 뜻합니다.  이렇게 사정이 전혀 다른데도 선각자들이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면서 일본의 외래어표기법이란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마도 견문과 시간 부족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들도 저마다 외래어 표기에 관한 규정이나 관례가 있지만 대개 외국어 어휘별로 표기법을 결정해 사전에 올립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우리말 ‘오빠’를 ‘oppa’로 사전에 등재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자주 사용해서 우리말이 된 어휘만 외래어로 규정하고 표준 표기법을 정해 사전에 올리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없애고 그 대신 외래어가 됐는지의 여부를 판별하는 방법을 개발하면 됩니다.  재론, 삼론하지만 외국어는 가능한 한 원어 발음을 살려 표기할 수 있도록 언어별 외국어표기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국어표기법  외국어표기법을 만드는 목적은 외국어를 우리 글로 표기해 발음을 배우고, 나아가 언어를 익혀 원어민과 소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한글로 외국어의 발음을 정확히 적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글이라도 다른 언어의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가장 가까운 표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영어 p는 발음이 상당히 가까운 ‘ㅍ’으로 표기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하지만 f도 가장 가까운 표기가 ‘ㅍ’이기 때문에 p와 f 모두 ‘ㅍ’으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외래어표기법이 요구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발음을 하나의 글자로 표기하면 두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므로 언어 습득에 지장이 생기고 원어민과의 원활한 소통은 포기해야 합니다. 발음 표기의 2대 핵심 요건은 정확성과 차별성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정확하게 표기하되 두 발음이 비슷해 표기가 같아질 때에는 새로운 표기법을 도입해서라도 반드시 서로 다르게 적음으로써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p와 ‘ㅍ’은 발음이 비슷하므로 그대로 쓰고, f의 새로운 표기로는 ‘ㅍ ’〫처럼 특수 부호를 첨가하거나 아예 새로운 글자를 만들면 됩니다.  다행히 우리는 훈민정음이란 훌륭한 모체가 있으므로 이로부터 빌려 ‘순경음(脣輕音) ㅍ(ㆄ)’을 쓰자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습니다.  ‘ㆄ’은 ‘ㅍ을 가볍게 발음하라’는 뜻에서 음가가 없는 ‘ㅇ’을 붙여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글자를 아래위로 붙여 쓰는 것을 연서(連書)라고 하며 합자(合字)의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연서로 쓰면 글자의 높이가 높아지고(예: ᅗᅮᆯ), 그렇다고 작은 글씨체로 쓰면 읽기에도 어려울뿐더러 새로운 글자체(폰트)를 만들고 자판도 고쳐야 하는 등의 번거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필자가 연서 대신 합자의 다른 방법인 병서(竝書), 즉 옆으로 붙여쓰기를 주장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렇게 쓰면 ‘ㆄ’가 아니라 ‘ㅇㅍ ’이 되며 글자체나 자판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합자의 매력 합자는 마치 여러 원료를 적당히 혼합해 원하는 성분을 만들어 내듯이 적당한 자모를 조합해 원하는 발음을 표기하는 매우 유효한 방법입니다.  그 덕분에 새로운 표기를 만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럴듯한 음가를 구현할 수 있어 기본 자모의 수를 늘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훈민정음 글자가 로마자 등 다른 글자와는 달리 모든 글자가 각각 고유의 음가를 갖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로마자는 이런 기능이 없어 단어마다 읽는 법을 따로 익혀야 합니다.  일테면 the와 think의 ‘th’는 발음을 단어별로 따로 배우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합자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합자의 원리를 역으로 적용하면 ‘ㅋ’은 ‘ㄱ’과 ‘ㅎ’의 합자이므로 ‘ㄱㅎ ’으로 대치하고 기본 자모에서는 빼도 됩니다.  그리하여 기술적으로는 한글 자음 14자를 10자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일찍이 주시경 선생이 주장했던 이론입니다.  놀랍게도 기본 모음도 10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음과 모음이 각각 10개로 굳어지면 자모의 활용 가능성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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