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갑; 교육전문가
며칠 전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둔 부모와 자녀 교육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요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선호하는 교육 단계가 ‘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특목고→SKY 대학’으로 이어지는 ‘교육 로드맵’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 같은 자녀 교육 로드맵 실천을 위해 요즘 젊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한 달에 수 백만 원에 달하는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영·유아 사교육 시장도 영어유치원부터 놀이학교, 학원, 학습지, 교구까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5세 미만 영·유아의 사교육비는 국내총생산(GDP)의 0.2%가 조금 넘는 2조7000억 원 규모이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지난 9월 전국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54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영·유아 사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2.4%가 미취학 자녀의 사교육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47.7%는 사교육을 위해 생활비를 줄이고 있다.
이처럼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과거 부모 세대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것처럼 대를 이어 사교육비 부담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그런데 영·유아의 과열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홍강의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은 조기교육의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그는 “학습효과도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곧 유아의 흥미를 잃게 하고 학습 거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어머니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더 이상 어머니의 요구와 바람이 반영되지 않게 된다.”며 “심각한 정서행동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서유헌 한국 뇌연구원 원장도 조기교육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 서 원장은 “아이들의 뇌는 신경회로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엉성한 두뇌 구조를 이루고 있다.”며 “전선이 엉성한데 과도한 전류가 흐르게 되면 과부하가 걸리듯이 과도한 조기교육은 과잉학습장애 증후군, 우울증, 애착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뇌 발달에 맞는 적기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우남희 동덕여대 교수는 “조기영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불안, 좌절감, 비난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되며 위축, 우울, 불안, 신체증상 등의 문제를 더 많이 보인다.”며 과열된 조기영어교육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행복’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지난달 ‘서울국제교육포럼’에 참석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행복과 시험 결과는 대립 관계가 아니라며 더 행복한 아이가 학교 성적도 더 잘 나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아교육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 온 이원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영·유아 조기교육을 우려하며 유아 때는 선행학습이 아니라 뇌에 사랑을 많이 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녀와 함께 교감하며 놀아주는 부모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영·유아의 과도한 조기교육은 자녀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가정 경제에 어려움을 주고 가정 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출산율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런 점을 반영해 서울교육청이 ‘유아시기, 놀면서 배울 때입니다’를 주제로 ‘유아 적기교육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이 과도한 조기교육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부모들이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 때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