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뉴시스 논설고문친구 = 억울한 죽음이 왜 이리도 많냐. 우리 대한민국에는?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잘못, 다른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번엔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 것들이 그렇게 떼죽음을 당했으니 가슴이 더 미어지지.나 = 맞아.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지하철과 이천 냉동창고 화재, 얼마 전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 참사가 참 많았지. 전부 수십 내지 수백 명이 세상을 떠나야했어. 친구 = 난 그 중에서도 1999년에 있었던 씨랜드 화재가 제일 가슴 아파. 유치원 아이들이 희생됐는데 나중에 현장을 수습해보니 쌍둥이 자매가 서로 껴안은 채로 발견된 거야.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네. 또 그 아이들 부모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이번에도 그거 못지않게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들이 엄청 많을 걸. 나 = 그런 게 쌓여서 국민적 트라우마라는 게 형성되는 거겠지. 잊을 만하면 대형사고가 터지니 원통하고 비참한 기억이 의식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거야. 친구 = 대형사고 뿐이 아니지. 개인적으로도 원통한 죽음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아. 고속도로에서 서로 기분 나쁘다며 추월 경쟁하던 차들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뒤에 오던 사람이 부딪혀 죽은 적도 있었잖아. 이혼한 부모 대신 할머니가 키우던 두 살짜리가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목욕탕에서 쓰러져 못 일어나는 바람에 굶어죽은 일도 있어. 울산과 칠곡에서 계모에게 맞아서 죽은 아이들도 있구나. 그런데 왜 이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일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나 = 신문에 났잖아. 안전불감증, 인명경시, 국가적 재난구조 시스템 미비 등등. 근데 그게 전부 같은 말이지.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 지금 내 행위가 남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것이 문제의 근원 아닌가? 친구 = 남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지 알면서도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지.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안 생길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억울한 죽음이 생기는 거야. 나 = 내 말이 그 말 아닌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한다고 뭐가 나아질까? 사고가 날 때마다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졌지만 달라진 게 없잖아. 또 이러다가 말겠지. 그러다 몇 년 후 큰 사건이 또 일어나면 진단도 처방도 되풀이 될 걸. 기사도 똑 같은 게 또 나올 것이고.친구 = 대통령이 저렇게 진노한 건 처음 아니야? 뭔가 전과는 다른 분위기 같기는 한데…. 처벌과 문책 범위나 수위가 전보다 높아질 것 같잖아? 무관용의 원칙이라는 말도 있더군. 나 = 그런데 일벌백계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에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책임자 색출이 희생양을 만든다거나 마녀사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어. 친구 =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할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무관용의 원칙이 왜 이번에만 적용되는 거지? 진작 적용됐어야지 않나? 금융사고 많이 일어났지? 신용정보유출사고도 파장이 컸지? 그것 말고도 국민생활에 엄청난 피해 일으킨 사건 많지 않았나? 왜 그런 사건에는 무관용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지? 사람이 꼭 죽어나가야만 그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거냐? 해수부마피아를 색출해 근절하겠다고? 다른 부처에는 마피아가 없고? 그건 왜 눈 감고 있는데? 그러니까 안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대형사고가 되풀이 되고, 말 잘 듣는 사람, 선실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던 아이들이 죽어나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