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온나라가 큰 혼란에 빠진 지난 25일 스페인 여객선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승객과 선원 334명 전원이 구조됐다. 차량 60대를 실은 차고에서 난 불이 크게 번지자 선장은 항만관제센터에 보고한 뒤 곧바로 승객들을 갑판 위로 대피시켰다. 물론 구명조끼를 입힌 뒤였다. 선장은 배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승객들을 배의 좌현과 우현에 절반씩 배치했다. 배는 해경 헬리콥터와 구조보트의 호위를 받으며 사고 30분 만에 무사히 항구로 돌아왔다고 전해졌다.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여객선 화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선장의 침착한 대응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세월호 참사에서는 선장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어이없게도 속옷차림으로 먼저 도망치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재난당국도 컨트롤타워가 없이 우왕좌왕했다. 소중한 인명을 더 살릴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다면 할 말이라도 없을 것이다. 매뉴얼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가. 문제는 부끄럽게도 이 매뉴얼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198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해양안전정책도 기본 계획과 세부 추진 과제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세부 추진 과제는 `선박 자동식별시스템 도입` `효과적 선박 조난통신체제 구축` 등 장비 도입과 같은 하드웨어 역량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이를 운용할 인적 자원인 소프트웨어의 `내실`은 뒷전인 셈이다. `연인원 2만 5천 명 교육 실시`라는 숫자 채우기 식의 그럴듯한 `선원 교육 보고서 문구`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이번 참사에서 선원들 대부분은 승객들에게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고 해 놓고는 자기들만 목숨을 건지지 않았던가. 세월호 참사에서는 사고 발생 30분 이내에 사고 처리가 됐어야 했다. 지난 2009년 뉴욕에서 여객기가 새떼와 충돌해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뒤 3분 만에 탑승자 150여 명 전원을 구조한 사례는 그만큼 매뉴얼이 몸에 익어 있었다는 말이다.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움직였고, 관계 기관 간 유기적인 협조가 빈틈없이 이뤄졌던 것이다. 우리 해양사고 70%는 선원들이 항해 매뉴얼을 안 지켜 발생하는 인재라고 한다. 방대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매뉴얼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고, 철저하게 익힐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차제 매뉴얼을 겉치레로 만드는, 선박 감독기관과 선사와의 유착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조치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