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현 / 언론인 대한민국은 또 다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이번에는 나라가 아닌 국가의 희망이자 미래가 될, 꽃보다 더 아름다운 학생들을 잃는 치욕을 겪은 것이다. 구조 손길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대낮 전국민이, 아니 전세계가 치켜보는 눈 앞에서 말이다. 갑오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그래서 국치(國恥)다. 갑오국치다. 어떤 인생, 삶이 가치가 없겠느냐만 나라의 동량이고, 부모 삶의 전부이자 심장과도 같은 우리 아이들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사고초기 혹시나 했던 일말의 구조 가능성마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있는 지금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과 자괴감이 국민들 뼛속 깊이깊이 배어들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는 독립운동으로 회복했지만,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청소년 수백 명을 수장시킨 치욕과 애끓음은 무엇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까. 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대한 신뢰도, 희망도 잃게 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 가. 서해훼리호 삼풍백화점 씨랜드 사고 등 차마 되새기기도 힘든 숱한 참사를 겪고서도 우리의 안전관리 시스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은커녕 의식조차 진화되지 못했다. 엄청난 사고가 터진 뒤에는 각본처럼 온갖 호들갑을 떨며 ‘재발방지’를 늘 상 외쳤던 정권, 공직자, 정치인들은 모두 어디 있는 가. 결국 우리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교훈은 커녕 안전 뒷전, 안전 불감증만 키워온 셈이다. 사회전반의 성장만능주의, 효율성만을 쫓는 성과주의에 매몰된 후진적 국가운영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해온 탓이다. 이래가지고서야 국민이 어떻게 국가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우쭐대던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너무나 처연하다. 더 가관인 것은 사고수습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행태들이다. 해경과 진도 해상관제센터의 사고 접수 및 초동 대처 과정에서의 허술함, 허둥대는 정부의 초기 사고수습대책본부 가동 체계, 이후에도 지속된 혼란에다 관료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은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정부의 권위, 신뢰는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 이번 사고는 일차적 책임은 인면수심의 세월호 선장에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사실상 사고를 유발시킨 국가 안전관리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승객을 저버린 선장, 엉터리 운항을 해온 청해진해운사 및 업주, 관리감독을 저버린 해양수산부 등 관계당국, 관련기관에 대해서는 엄벌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특히 관련부처와 기업, 기관간 마피아 뺨치는 이권 및 먹이사슬 구조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노골화 돼왔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수술이 필요하다.재난관리 및 안전 입법을 소홀히 해온 정치권도 도의적, 정치적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이들이야 말로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초래한 ‘5적(賊)’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원통하다고, 안타깝다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를 악물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끌어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가의 재난안전 시스템을 철저하게 뜯어고쳐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안전보다 성과를 우선시해온 사회 전반의 의식구조도 반드시 바꿔나가야 한다. 그 것만이 정부와 관료, 정치인은 물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저 깊은 심연 속에서 어이없게 스러져 간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사죄하는 길이다. 4월16일은 제 2의 국치일이다. 앞으로 이날만큼은 국가와 국민 모두가 단원고 학생 등 희생자 300여명의 고통과 억울함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국치일인 동시에 이들에 대한 추모일이 돼야 한다. 더불어 국가 전반의 안전관리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 안전을 소홀히 해온 우리 모두 반성의 시간이 돼야 한다. 제발 제 3의 국치가 없도록.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이날을 새겨 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