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극 / 언론인 세월호 침몰 20일을 넘겼다. 상당수 아이들은 아직도 차디찬 바다에 누워있다. 진도체육관에 대통령이 다녀가고 내각이 총출동하다시피 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피멍든 가슴과 억울함을 달래 줄 길이 없다. 국민들의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이 젖고 가슴이 젖는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고 선장과 선원들은 왜 저리 비겁했고 정부는 왜 이리 무능한 걸까.세월호는 돈벌이가 되는 화물을 더 적재하기 위해, 승차권을 한 장이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하며 그만큼 승객의 안전을 포기했다. 한국선급은 퇴역을 앞둔 로로선의 운항가능한 선령을 늘려주는 불온한 문서에 도장을 쾅쾅 찍어줬다. 청해진해운은 증축으로 부하가 잔뜩 걸린 세월호에 규정을 어기고 제멋대로 더 많은 화물을 실었다. 그만큼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어냈을 것이고 그만큼 배의 복원성이 떨어진 채 비극을 향한 항해가 시작됐다. 그날따라 인천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대부분 배들이 출항을 포기했지만 세월호는 2시간을 기다리다 기어이 부두를 떠났다. 영업손실을 우려한 누군가가 안전 따위는 아랑곳 않고 출항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시간에 쫓긴 세월호는 권고항로보다 지름길인 맹골수도를 통과하던 중 변침구간에서 방향을 틀다 중심을 잃고 왼편으로 기울며 침몰했다. 선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항해사와 조타수는 모두 맹골수도가 초행인 계약직 선원들이었다. 청해진해운은 다른 선사 임금의 반값수준에 이들을 고용했다. 세월호는 이렇게 승객의 안전과 돈을 바꿔먹은 탐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집어졌다. 천진한 아이들을 실은 배는 어른들의 부패와 무능, 이기심의 바다에 침몰했다. `안전한 선실에서 기다리세요`선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세월호를 탈출하던 그 순간까지 악마의 목소리는 되풀이됐다. 아이들은 구조대가 찾아올 거라는 어른들의 거짓약속을 믿었다. ‘선상 대통령’인 선장이 구조활동을 팽개치고 달아나는 추악한 장면은 온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선장의 모습에 온갖 탐욕, 부패, 무능, 이기주의의 화신들이 오버랩 되면서 복장을 터지게 만들고 있다.이제 아이들도 어른들도 위기가 닥쳤을 때 저렇게 홀로 도망칠 자들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구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있다. 참담한 재난 속에서도 빛난 의인들은 모두 주변에서 늘 마주치는 보통사람들이었다. `안전한 선실에서 기다리세요` 란 낭랑한 거짓말은 이제 `고분고분 기다리면 다 죽는다`는 의미로 해독이 된다. `컵라면`은 분수 모르는 권위의 상징이 됐고 `기념촬영`은 염장을 지르는 무례가 됐다. 대지진이 지형을 바꿔놓듯이 세월호 참사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놓고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인가. 이런 자문자답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앞의 두 가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해졌지만 세 번째 의문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빤히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는 정부는 무슨 존재가치가 있을까. GDP 성장률이 얼마고 모 기업 분기 영업이익이 몇 조원이고 주가지수가 2000을 돌파했느니 떠들어본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국민들의 귀에 대고 어처구니없는 귓속말을 속삭이지 말라. 구조장비 살 돈은 없어도 140억 짜리 골프장 지을 돈은 있는 해경이 정말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도로 안산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은 `저 아이들이 바로 내 새끼`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이 모든 권력뿐 아니라 희망도 미래도 왕따 당한 정부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으로부터 나올뿐이란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칠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멈추고 계절은 야속하게도 아름답지만 입을 꽉 다문 사람들은 서로에게 눈빛으로 묻고 있다.대한민국은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