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언론인친구 = 세모그룹 유병언이란 사람 만난 적 있다며?나 = 80년인가, 81년인가. 기자 초년병일 때 인터뷰했지. 친구 = 어땠어? 인터뷰를 왜 했는데? 나 = 이 사람이 그때는 삼우트레이딩이라는 회사 사장이었는데, 기부를 무척 자주했어. 뭉클한 미담기사가 나가도 기부,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쳐도 기부를 하는 거야. 꼭 1백만원씩 신문사로 보내 미담 주인공이나 사건 희생자에게 전해달라고 했지. 친구 = 그가 기부천사였다고? 아이러니네, 요새는 자기 때문에 국민들이 성금을 내고 있으니. 나 = 그랬다니까. 하도 자주 기부를 해서 미담이나 애처로운 사고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보도가 나가면 편집국에 ‘야, 유병언씨 또 백만원 가져오겠네’라는 농담이 나돌았다니까. 친구 = 그러니까 그때 유병언이는 성금 잘 내는 미담의 주인공이었고, 너는 그 미담의 주인공을 인터뷰한 거다, 이런 이야기겠네?나 = 그렇지. 무슨 돈이 그리 많나, 어떤 사람인가, 등등 기자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 그러던 차에 유병언이와 동향인 회사 선배가 다리를 놓아주더라고. 친구 = 인상이 어땠어? 나 = 인상보다도,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내 인터뷰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을 키워줬고,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로 연결됐을 거라는 느낌이야. 오래전이어서 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가 감추는 게 많구나라고 생각했던 건 분명해. 이미 다 알려진 사실만 이야기하고 알고 싶은 것들은 얼버무리거나 전혀 엉뚱한 말만 하는 거야.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데는 실패했다는 거지.친구 = 예를 들면?나 = 삼우트레이딩이 무슨 회사입니까라고 물어봤지. 종이비누 만드는 회사래. 특허품이어서 판로가 좋대. 아무리 특허품이라도 이름도 생소한 중소기업이 비누를 얼마나 팔길래 그 많은 성금을 낼 수 있습니까 이러면 말을 돌리거나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거 같아.친구 = 그 회사가 종교집단이라는 냄새는 못 맡았어? 나 = 종교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 한 것 같아. 하지만 나중에 오대양 사건에 이 사람이 관련됐다는 이야기가 돌 때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 인터뷰할 때 뭔가 그런 낌새를 보였던 것 아닌가 싶어. 친구 = 그 인터뷰 기사가 유병언이를 키워줬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그건 무슨 이야기? 나 = 이 사람이 인터뷰할 때 앞으로 한강에 거북선 모양의 유람선을 띠워 외국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등 내 생각엔 휘황한 소리를 하는 거야. 비누 만드는 중소기업이 어떻게 그런 큰 사업을 할 수 있겠냐는 의심이었지. 근데 결국 세모를 세워 그런 걸 다 했잖아. 친구 = 5공 실세들이 그 사업을 밀어줬다는 이야기가 있지.나 = 그 말을 하려는 거야. 이 사람이 5공 실세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해 그 많은 기부를 시작했거나, 5공 실세들이 사업을 밀어줄 테니 우선 이름부터 내라고 기부를 시켰을 거라는 의심이 든단 말이야. 어느 것이든 나와 다른 기자들이 쓴 유병언 인터뷰가 그들의 목적 달성에 어쨌거나 도움이 됐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친구 = 속아서 유병언이 인터뷰를 했다는 말이군. 속은 건 네 책임이지. 그때 유병언에게 놀아난 건 너와 언론의 책임이야.나 = 지금 유병언에 대한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 해도 그 인터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함량미달인 기사라는 생각도 떠나질 않았어. 근데 결국 이런 일이 터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