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환 / 뉴시스 사회팀 기자기자질 그만둬라."일본식 표현으로 `사쓰마와리(경찰 사건기자)`는 혹독한 수습 기간부터 출입처 `형님(사건기자는 경찰을 형님이라 부름)`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가까이 하지도 멀리 하지도 말라)`하라는 일종의 세뇌 교육을 받는다.기자와 경찰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간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돌아서면 서슴없이 욕을 내뱉는 사이기도 하다. 인간적으로 너무 친해지면 인정(人情)에 끌려 특혜나 편파시비에 휘말리거나 자칫 좋은 기사를 놓칠 수 있어서다. 그날도 어김없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형님과 종종 가는 60년 전통의 돼지껍데기집에서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마시며 언제 끊길지 모를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이어갔다. 이제 겨우 4년차에 불과한 사쓰마와리와 만날 `별일 없다`고 선수 치는 14년차 경력의 형님이 만나다보니 술잔이 훌쩍 돌아 순식간에 거나하게 취기가 올랐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형님이 대뜸 `기자질 그만둬라`며 호통을 쳤다.형님은 얼마 전 한 언론사의 오보로 곤욕을 치른 터라 상투적인 훈계로 들렸지만 면전에서 듣기에는 거북했다. 계집질, 노름질, 이간질, 고자질 등 `질`자로 끝나는 말치고 좋은 게 하나도 없는 탓에 `직업정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언`이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그러자 형님은 "최근에 사실검증 없이 주관과 의도를 앞세운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성 기사로 사실이 왜곡되고, 결국에는 무엇이 사실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다"며 푸념을 토해냈다. 또 기자는 별생각 없이 저지르지만 그 폐해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핀잔과 욕설도 뒤따랐다.한 언론사가 형님이 수사과정에서 사기 피의자에게 `사건을 축소해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기사가 나간 뒤 서울경찰청에서 고강도 감사를 벌였으나 무혐의 처리됐다. 확인 결과 동종 전과로 교도소를 들락날락 거렸던 사기 피의자가 악의적인 내용을 기자에게 제보한 것을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해당 기자에게 사실이 아니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다. 해당 언론사에 수차례 항의 끝에 기사는 삭제됐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파렴치한 경찰관`으로 낙인 찍혀버린 후였다. 형님은 사실 확인도 없이 경찰 조직을 손보겠다는 감정만 앞세운 `군기 잡기식` 오보를 개탄스러워 했다. 사실 확인 없이 쓴 기사로 조짐을 당한 조직들이 흔들리거나 어려워진 경우를 많이 봐온 탓에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자리만 지키고 앉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정적이 흘렀다. 기자라는 우쭐함에 취해 경찰과 무작정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이 전부인양 착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입으로는 사회적 책임과 직업정신을 얘기하면서 사실 확인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또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기자라는 직업이 기사를 앞세워 `대접받는 월급쟁이`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만족보다는 후회와 반성이 앞섰다.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6개월을 꼬박 버텨 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서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사실을 전달하는 사명감으로 보낸 지난 일들이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이날 술잔에 비친 내 모습에 도무지 고운 시선이 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