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 / 언론인   1984년 6월18일 12발의 총성이 콜로라도 덴버의 밤 공기를 찢었다. 피살자는 앨런 버그(Alan Berg).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동소총이 불을 뿜었다. 버그는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였다. 그는 유대인으로 진보적 방송인이었다. 범인은 브루스 피어스(Bruce Pierce)였다. 피어스는 `기독교 정체성(Christian Identity)`을 신봉하는 단체의 일원이었다. 이 단체는 `기사단(The Order)`, 또는 `침묵의 형제(Silent Brotherhood)`로 불렸다. 기독교 정체성은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이다. 유럽계 백인만이 신(神)이 선택한 백성이라고 믿는다.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청사 폭파 사건의 주범 티모시 멕베이(Timothy Mcveigh)도 기독교 정체성 신봉자였다. 버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살생부에 올라 있었다. 인종차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정체성 신봉자들은 버그를 백인사회의 순수성을 해치는 사탄이라고 여겼다. 기독교 정체성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종주의`와 `반(反)유대주의`다. 백인은 유색인종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라고 여겼다. 유대인은 악마의 자식으로 간주했다. 유색인종과 유대인을 방치하면 엄청난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색인종과 유대인과의 통혼을 가장 큰 죄로 생각했다. 연방 정부에 적개심을 표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은 연방정부가 유대인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시온주의 꼭두각시 정부`로 폄하됐다. 유대인, 즉 사탄이 미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저항과 투쟁이다. 일부는 세금 납부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급진파는 `무장 투쟁`에 의존했다. 칼과 총을 들고 아마겟돈의 결전을 준비했다. 민병대 같은 무장집단을 운영했다. 기사단이 대표적인 예다. 로버트 매튜스는 순수한 유럽계 백인사회 건설을 꿈꿨다. 기사단은 꿈을 실현키 위한 핵심 조직이었다. 준비작업을 위해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무장강도와 지폐 위조로 자금을 조성했다. 위조 지폐를 찍어냈다.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사고가 생겼다. 조직원 한 명이 위조지폐를 유통시키다가 붙잡혔다. 조직원을 빼내려면 보석금이 필요했다. 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대담해졌다. 은행 강도짓을 시작했다. 잇단 강도 행각을 통해 수십만 달러를 확보했다. 1984년 7월에는 현금수송트럭을 털었다. 단번에 360만 달러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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