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등으로 국내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수도권 일대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집회 등으로 소란스럽다.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포함해 역사를 논하는 역사학자들과 대학교수들, 학교교사들이 하루가 멀다시피 길거리로 나와 피켓과 촛불 등을 들며 반대시위에 나서고 있다. 직장에서 내몰릴 처지에 놓인 근로자들도 길거리로 나와 노동자들만 희생해야하는 정부의 억지스런 ‘노동개혁’에 울분을 토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대구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 일대와 경북대병원을 비롯한 경북대, 영남대 등 대학가에서도 피켓 등을 든 교수, 학생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여러 정책과 관련한 반대시위가 진행되고 있다.도교동(39)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 조직부장은 최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부의 단도직입적인 정책 추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밤늦도록 진행되는 회의 등으로 인해 ‘쪽잠’을 청하기도 부지기수. 도 조직부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이런 현실에까지 치닫게 된 모습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팽배한 개인주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달렸고 그 결과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 도 조직부장의 생각이다.도 조직부장은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은 과거 군사독재시절처럼 국민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은 정책추진을 이어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민주주의 국가답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정책추진을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개혁에 있어서도 도 조직부장은 “지금 국내 실업률 등을 놓고 봤을 때 ‘노동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고 긍정하면서도 “하지만 노사가 원만히 합의하에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어 ‘노동개혁’은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주주의 구현에 앞장선 ‘넥타이부대’ 알고 계십니까?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40대 이상의 중·장·노년층들에게 ‘군사독재’란 단어는 낯선 말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을 통틀어 일컫는 ‘군사독재’ 시절은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로 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화염병을 들고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군부독재가 결정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넥타이부대’의 시위 동참이었다.앞서 1987년 1월,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박종철 군이 고문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보기관은 단순 사망으로 감추려 했으나, 관련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고문에 의한 사망이란 사실과 권력이 이를 조작하고 감추려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이에 분노한 국민은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전두환이 여당의 후계자를 지명하던 6월 10일을 기해 독재 타도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다.이런 가운데 당시 사회의 중심축에 서있던 ‘넥타이부대’도 길거리로 나와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던 이들의 시위 참여는 당연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직장의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 무렵을 이용해 시위대와 합세해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결국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하기로 약속했고, 정치의 민주화를 실현함은 물론 경제 민주화와 평등 사회를 향한 디딤돌이 됐다. ▣ 역행하는 ‘대한민국’최근 정부는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돼 있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의사를 외면한 채 무조건적인 ‘국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노동개혁’에 있어서도 근로자에게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이와 관련 도교동(39)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 조직부장은 이런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했다.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생겨나기 시작한 노조가 다시금 여러 이유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이런 정책들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지역주의도 이런 문제점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실제로 최근 경북대병원에서 추진된 ‘임금피크제’ 동의 여부와 관련, 내부에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북대병원 노조에 따르면 병원에선 간호부장을 비롯해 각 병동 수간호사 등이 병원 직원들 불러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경북대병원의 한 병동 수간호자는 “우리라고 임금피크제에 서명을 원했겠는가”라고 강제성이 동원된 서명임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병원을 다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위의 눈총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도 조직부장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종합해보면 모든 것이 과거 시절로 역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나아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무시하는 지금의 국가가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국가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 몰두하고 있는 국민들의 ‘무관심’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넥타이부대’의 시위 참여였던 것처럼 지금 사회에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투쟁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내에서 메가폰 등을 들고 강경한 목소리만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투쟁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도 조직부장은 “많은 집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투쟁 대부분이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 나온 것인 만큼 강경한 목소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 시대는 시민의식이 향상된 만큼 투쟁방식도 이들과 동화될 수 있게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에 대한 성찰로 일궈낸 투쟁대구가 고향인 도교동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 조직부장이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하게 된 때는 1996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하지만 그는 선배의 권유 등으로 마지못해 집회에 참여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스스로가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학교 운동권 내에서 ‘열혈 여전사’로 불렸을 만큼 투쟁에 나섰던 그녀는 이후 청년회 활동을 거쳐 시민단체에 가입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는데 노력했다.하지만 그녀는 투쟁을 해오면서도 남들과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가야할 길을 꾸준히 모색하고 투쟁의 바른 의미를 전달하게 위해 스스로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봤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투쟁의 무리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도 조직부장은 “오랜 시간동안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투쟁에 참여해왔지만 정작 자신을 뒤돌아보지 못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며 “자신을 자주 되돌아볼수록 더 강한 내면의 자아성찰이 이뤄진다는 공자선생의 말처럼 자신도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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