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살면서 실패가 많았습니다. 대통령 당선도 재수로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주저앉히는 것은 결코 실패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실패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실패는 오히려 우리를 더 성장시켜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지난해 2월12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졸업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긴 축사 중 한 대목이다. 사회진출을 앞둔 졸업생에게 전한 응원의 메시지이면서, 자신을 향한 다짐과도 같았던 메시지가 남북미 3자 회동을 성사시킨 대목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스스로를 ‘재수 전문가’라 부르는 문 대통령이 남북미 3자 정상간 만남의 자리를 두 번째 도전 끝에 현실로 만들었다. 지난해 한 차례 실패 속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추진한 끝에 역사적인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했다.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 자유의 집 일대에서 만났다. 남북미 3자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분단 70년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비록 의전과 격식을 갖춘 합의문을 도출한 일반적인 정식회담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남북미 3자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평가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더 많은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시각에 무게가 쏠린다.북미, 남북이 따로 만나 각자 나눈 얘기를 공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 자리에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오해와 왜곡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끝까지 거두지 못했던 불신과 반복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특히 이번 3자 회동을 통해 그동안 북한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받아왔던 문 대통령의 비핵화 중재외교에 대한 회의감도 불식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은 지난 27일 개인명의 담화를 내고 “조미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봐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며 남측을 향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오늘의 3자 정상회동에 있어 ‘철저한 조연’으로 스스로를 낮췄다. 문 대통령은 “원래는 오울렛 GP 공동방문까지만 예정돼 있었던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제안에 따라 이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다”며 모든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렸다.이런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이뤄진 남북미 3자 회동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은 지난해 처음 시작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4·27 판문점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문 대통령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던 지난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북미 정상의 역사상 첫 만남이 예고됐던 6·12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움직일 수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길을 원했다. 합의-파기-불신을 반복해 온 과거 북미 협상의 사슬을 끊기 위해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었다.이에 따라 ‘센토사 합의’ 직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늦어도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던 7월17일 전후로 종전선언이 이뤄지기를 희망해 왔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인 중국이 관여하면서 3자 종전선언은 무산됐다.강하게 추진했었던 지난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무산된 데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도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그동안 장점으로 내세워왔던 ‘톱다운(Top-down·정상 간 합의를 하위로 이행하는 방식)’에 회의론이 제기 됐었다.‘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던 외교가의 속설이 무너지면서 미국 조야에는 정상 간에 이뤄지는 즉흥적 판단이었다는 비판이 집중됐다. 문 대통령이 최근 ‘보텀업(Bottom-up·실무 레벨에서부터 상위로 협의를 진행하는 방식)’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테판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뒤 기자회견에서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협상을 열 필요가 있다”며 “실무협상을 토대로 양 정상 간 회담이 이뤄져야 지난번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 없이 헤어지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결과적으로 지난 1년 간 북미 대립 70년사를 뛰어넘을 환희의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는 시행착오와 실패, 인내의 순간이 더 많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불었던 ‘한반도 봄’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문 대통령은 “그러나 대화 외에는 평화를 이룰 방법이 없다”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3시간 만에 역사적인 남북미 3자 회동의 역사적인 현장에 섰다. 대학입시, 사법고시, 대통령 선거까지 한 번에 이루는 일 없이 재수를 해야했던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는 실패는 성장의 힘이 된다’는 자신의 철학이 결과적으로 옳다는 점을 입증해 보였다. 특유의 인내심을 바탕으로 전례없는 남북미 3자 회동마저 2년 간 도전 끝에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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