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익숙해진 지금 세대에게는 용어조차 생소하겠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는 VHS와 베타맥스 등 두 가지 표준을 둘러싼 전쟁이 치열했다. 두 표준의 특징을 칼로 무 자르듯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VHS 방식이 저가 보급형 기술이었던 반면, 베타맥스는 보다 고가 고품질 시장을 노린 기술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 전쟁의 승리는 보다 싸고 편리하게 카세트 레코더를 제공한 VHS에게 돌아갔다. 베타맥스 방식은 고화질 영상을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비디오 렌트 시장이 대세가 되면서 베타맥스 방식은 역사의 뒷마당으로 사라져갔다. 비슷한 사례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PC의 개념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은 초창기 시장의 선두주자였고 기술적으로도 앞서갔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PC의 표준을 장악한 IBM 호환PC에 시장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특히 IBM이 자신들의 기술을 개방해 수많은 업체들이 그 표준을 이용하게 만든 것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치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광범위한 대중에게 손쉽게 전파하는 능력이 정치투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이 능력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좌파는 구체적이고 도식화가 가능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그것이고, 주체사상도 비슷하다. 설계주의적 특성을 갖는 좌파 이념은 지식층과 활동가가 광범위한 대중을 설득하고 세뇌하여 지지층으로 만드는 데 유용한 무기 역할을 한다. 값싸고 쉽게 접근 가능한 VHS 방식의 비디오테이프, IBM 호환PC와 비슷하다. 우파 이념은 그렇지 않다. 좌파처럼 설계주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완결된 체계로 도식화하기가 어렵다. 우파의 이념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혜의 덩어리에 가깝다. 비가시적이고, 비정형이다. 그러니 단순 명료하게 요약하기도 어렵다. 그냥 삶의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단기간에 광범위한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념적 특성 때문인지 우파는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는 경우가 많다. 우파 이념은 탄탄한 지적 전통 속에서 정치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국가에서 주로 위력을 발휘한다. 역사적으로 우파 이념은 현실 정합성을 검증 받았지만, 지적 기반이 취약한 나라의 경우 좌파의 이념 공세에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적으로 앞선다고 평가받던 베타맥스 표준이나 애플 PC가 광범위한 대중 접촉면을 갖고 있던 VHS나 IBM 호환PC에 패배한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를테면 정치 이념 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한국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이런 이념적 취약성이 매우 두드러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우파의 이념적 취약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파 정치교육도 활발하게 시도됐지만 성공 사례는 별로 없다. 초창기에 많은 수강생들이 모였다가도 오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한다. 정형화 도식화가 어려운 우파 이념의 특성 때문에 커리큘럼 구성 자체가 어렵고 강사진 확보도 마찬가지다. 우파가 주도권을 쥔 것으로 평가받는 유튜브 시장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 도그마화하기 어려운 우파 이념의 특성상 각각의 논객이 상황과 이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쉽고, 그것을 통제 규율할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사소한 이견으로도 분란이 극대화되고 적대 진영을 대하는 것보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우파의 이념은 그 고유한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 및 전파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좌파의 이념 학습처럼 고정된 커리큘럼을 훈련된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대중의 머릿속에 세뇌하는 방식은 우파에게 적합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출처: 펜앤드마이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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