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당이나 선거를 전후해서는 공천 잡음이 터져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파 정당에서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나곤 했다.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보여준 공천 난맥상은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런 공천 난맥의 근본적인 이유는 당 지도부의 위탁을 받은 소수 인사들이 밀실에서 공천을 좌우하는 데 있다. 공천 기준도 분명치 않고 실제 그 기준을 적용한 구체적인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뒷말이 나오게 되고, 정당은 정치 메시지와 콘텐츠가 유통되는 결사체가 아니라 정치 이권이 거래되는 싸롱이 된다.
우파 정당의 정치 리더십 불임 현상이 심화된 것에는 이런 공천 파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우파 정당은 사실상 청와대의 국회 파견 조직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당원들이 자기 손으로 리더십을 창출해본 경험이 없다. 그런 관성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도 당원들을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에서 배제하고 구경꾼으로 남겨두는 현상이 이어져왔다.
당원들이 상향식으로 정치 리더십을 창출하는 시스템도 없고 당원들의 정치적 훈련도 부족한 상태의 해결책은 정치권 밖에서 출세한 유명인을 영입하는 것이다. 우파 정당에 변호사나 교수 등 명망가들이 특히 많은 이유가 이것이다. 그런데, 그런 명망가들이 정치 리더십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왔을까?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전개됐던 선대위 구성 갈등도 결국은 당의 주인인 당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국민의힘의 자산을 노린 빈집털이들이 서로 삿대질하고 몽둥이 휘두르며 싸우는 셈이랄까? 이들이 싸우는 동안 정작 당의 주인인 당원들은 잠들었거나 내 일 아니라며 팔짱 끼고 구경하는 판국이다.
좌파들은 시민단체 정치를 해왔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이 어젠다와 인력을 민주당 등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좌파 빅텐트를 구성했던 것이다. 비록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이런 구조를 통해 좌파들은 광범위한 대중들과 연계하고 나름의 정치 생태계를 형성했다.
반면 우파는 극소수 정치 자영업자들이 대중과 괴리된 채 자신들만의 밀실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지지 대중을 구경꾼이나 박수부대로 만드는 행태를 몇십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우파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지지자와 당원들에게 죽창 주고 기관총 난사하는 적진에 돌격하라고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좌파의 시민단체 정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왔지만 약점도 많다. 기본 자세가 아마추어적이며, 대중적 광기에 휩쓸리기 쉬우며,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다. 특히 법치를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다. 우파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통해 비로소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 정당정치의 출발이 진성 당원제의 정착이고, 진짜 정치학교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직선거 자격시험이라는 얄팍한 쇼맨십 대신 진성 당원제의 도입과 정착에 승부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젊은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런 정면승부였다고 본다. 친인척 등의 등쌀에 마지못해 써주는 1천원 입당원서와 스스로 국민의힘의 정치적 가치에 동의하여 내는 1만원 납부 진성당원. 우파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대선 승부와 별개로 이 정도 근본적인 혁신이 없으면 우파들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상상해보자. 매월 당비 1만원 내는 진성당원 50만명을 갖춘 우파 정당. 매월 걷히는 당비만 50억원, 연간이면 600억원이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지금보다 몇십 배 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
이걸 못한다고?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정치를 관둬라. 우파는 이걸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실천에 옮기는 정치 지도자와 그 깃발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 명제로 우파의 부활과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원하는 지지자들을 설득해 진짜 당원으로 조직할 수 있다. 진심은 통한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이럴 때 필요한 단어일 것이다.<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