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뼛속 깊은 예주인이다.
다시 말하면 영해사람이다.2016년 4월4일 예주신문이 세상밖으로 나왔다.하지만 거대한 암초를 만나 바다 깊숙히 침몰했다.10여년 만에 인양됐다. 그리고 부활했다.오늘 예주신문은 복간호를 발행했다.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불굴의 정신을 담은 대표적인 한자성어다.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수많은 시련과 역경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강 인한 의지를 상징한다. 잡초처럼 말이다. 이미 한번 실패라는 고 난을 겪었지만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려 한다.천년의 혼(魂)이 살아 숨쉬는 예주 그 이름만 들어도 나는 가슴 벅차다.그곳은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을 자랑하는 대진해수 김성용 본지 발행인·대표❙ 단체장 일정 ❙욕장이 있다.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이 호연지기를 키우던 `관어대`가 있다. 예주의 상징 상대산과 더 넓은 연평 들녘은 기름진 옥야천리다. 상대산은 높이 183m의 영해면지역 의 대표 적인 산이다.서쪽으로는 등운산(786m)과 칠보산(810 m)를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수평선을 낀 동 해가 펼 쳐지는 명승지다. 북쪽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끼고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포 항 호미곶이 한눈이 들어온다. 이 뿐인가. 3.18 영해만세운동은 민족정신에 큰 불씨 를 당긴 순수 민간인의 항일 운동 발원지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1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영해에서 항 일운동을 일으킨 신돌석 장군 이 있는 곳이다.교육은 어떠한가11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해초등학교는 예주의 산실이다.그런 예주에서 자랐다. 예주는 영해면(寧海面)의 옛 지명이다. 940년(태조 23)예주(禮州)로 고쳐 지군사 (知郡事)를 두었으며 현종 때 방어사(防禦使) 로 바 꾸어 관할구역을 넓혔다. 보성부(甫城府)의 영양·평해 · 영덕의 3개 군과 청도(道)·송생(松) 의 2개 현을 묶어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이뤘다.1259년(고종 46)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 護府)가 됐고 그 뒤 예주목으로 승격됐다가 1310년 (충선왕 2)영해부(寧海府)로 강등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덕군 영해면이 됐다.그 찬란했던 예주가 이제는 회색도시가 됐다.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 지면서 `예주의 미래`가 그야말로 `풍전등화`다.시골 경제가 그렇다고 하지만 이미 생활 경제는 무기력에 빠져있다.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서민경제는 위협받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다. 취업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영덕이 `희망 의 땅`에서 `척박한 땅` `회색도시`로 변 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내리막길 굴러가는 눈덩이에 가속도까지 붙었다.인구 감소세가 갈수록 뚜렷하고 노인인구의 증가세는 가팔라 고령사회 진입은 멀지 않는 장 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영덕이 늙어가고 있는 셈이다. 예주는 소외된 곳이다.영덕군이 균형발전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난지 오래다.일제강점기 시절 예주는 너무 핍박 받았다. 항일투쟁의 항거가 너무 거셌다는게 이유다.그런 예주가 영해면으로 강등된지 1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여전히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난한 동네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대대로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 아닌가.이제 그 터전을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걸고 예주인들이 봉기(蜂起)해보자.그 화려했고 찬란했던 예주의 명성을 되찾아보자.허리띠를 졸라매고 신발끈을 바짝 조여매고 다시한번 뛰어보자.예주는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선혈의 고장이기 때문이다.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본고장 예주, 이제 목소리를 한껏 높여보자.그래야 예주가 발전할 수 있다.그냥 맥없이 주저앉아 세월을 보낸다면 예주의 후손들이 뭐라고 할것인가.분열의 땅, 척박한 땅을 만들었다는 후손들의 표독스런 말이 무섭고 너무 두렵지 아니한가. `희망의 철학`을 쓴 독일의 블노흐는 “인간 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 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다.정호승 시인은 `창은 별이 보일 때만 창이며 희망은 꿈꿀 때만 희망`이라고 노래했다. 희망은 꿈꿀 때 아름답다.그 희망의 `예주 노래`를 힘차게 태동한 예주신문과 손잡고 불러보자.아이의 미소가 바로 예주 천년의 부활이다. 예주신문은 지역민의 바람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혁명의 신문이 되겠다는 다짐 속 의지를 꼭 실천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