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선(언론인)
대망의 새해가 밝았다. 매번 아쉬움과 실망으로 한 해를 보내고 부푼 희망으로 한 해를 맞이하곤 하지만 올해에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 본다.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에는 이 한반도에 부디 장대한 서광이 비치기를!
지난해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경제가 여전히 죽을 쓰고 한반도 상황은 한 치를 내다보기 힘든 국면으로 치닫는데도 위정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진저리 나도록 패싸움만 벌였다. 그 통에 죽어난 것은 애먼 백성과 나라뿐이다. 과연 박근혜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가? 외교와 대북 정책에서는 다소 성과가 있었다지만 국내 정치로 눈을 돌리면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격상시키는 등 국제무대에서 꽤 실적을 올리고도 퇴임 후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연상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사사건건 발목 잡고 늘어지는 야당 때문에 도통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 달 보름을 넘긴 정부조직법 개정안부터 시작해 대선 끝난 지 1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불복 타령에 이르기까지 불문곡직 반대만 일삼는 터에 어떻게 원만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법도 하다. 세상에서 맞수를 찾기 어려운 불통이 되레 상대방보고 불통이라며 마구 몰아붙이니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올 만하다. 그러나 야당 탓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어쨌든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이 땅에서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어떤 사안이든 편을 갈라 극한 대치로 가는 진영논리만 판치는 정치판은 마치 위험한 물건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위정자들이 백성을 보살피는 게 아니라 외려 백성이 그들을 걱정하는 형국이다. 이런 정치판을 그대로 두고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을 확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얘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주문하며 신(新)경영을 선언했듯이 정치도 일대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정치도 국민의 한숨이나 자아내는 한심한 수준에서 삼성전자처럼 세계 일류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자면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또는 본인 탓이든 아니든, 몹쓸 이미지로 덧칠된 ‘불통의 올가미’를 벗어던지는 게 급선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새해 들어 갖는 기자회견이 취임 후 처음이라면 국민과의 소통에 얼마나 게을렀는지 쉽게 짐작된다. TV방송국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지적한 의견이 60%에 육박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합’을 내걸고 승리했지만 소통 없이는 대통합은커녕 소통합도 어림없다.
진정 국민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회의, 또는 각종 행사에서의 ‘말씀’이나 대변인 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중대 현안이 생기면 그때그때 기자회견이나 국회 연설, 대(對)국민 연설, 대(大)토론회 등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말해야 한다. 그게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다. 인사 쇄신도 절실하다. 자기 진영 사람만 골라 쓰기보다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과감히 발탁하는 탕평책이야말로 대통합의 출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야당에도 좀 더 자주 손을 내미는 적극 행보가 바람직하다. 필요하면 수시로 야당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대화하거나 전화를 직접 걸어 설득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삼고초려의 노력으로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을 끌어들여 대(大)연정을 성사시킨 사례는 훌륭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일까지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리려면 어떻게든 야당과 동행하는 게 필수다.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기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광우병이나 민영화 같은 괴담에 편승하고 불법 파업이나 두둔한대서야 다음 대선도 보나마나 뻔하다. 국정 발목잡기로 정부가 아무것도 못하게 한 것을 야당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그보다는 수권 능력이 없는 정당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정정당당한 정책 대결이 정권 탈환의 지름길이라는 간단한 명제를 하루빨리 깨닫는 것만이 야당의 살 길이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제도가 처음 도입된 갑오경장이 올해로 120주년을 맞는다. 위정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청마의 진취적 기상을 이어받아 구습을 떨쳐 내고 ‘선진 정치의 원년’으로 기록될 또 하나의 갑오경장을 국민에게 선사하는 멋진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