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라는 전문직 이름을 ‘동물 의사’로 바꾸자. 또 ‘수의학과’는 ‘동물 의학과’로 변경해야 한다. 우리는 동물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의료인을 ‘수의사’라 부른다. 하지만 수의사라는 명칭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구시대적이고 고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의사라는 직업명에서는 동물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동물 의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최근의 추세는 어떤가? 현존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알리고 소개하는데 보다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이름을 붙인다. 이름이 구시대적이면 과감하게 바꿔버린다. 예를 들어 보자. 농과대는 농생명 과학대로 개칭했다. 임학과는 산림 자원학과, 축산학과는 동물 자원학과나 응용 동물 과학과로 각각 명칭 변경을 서두르고 있다. 한의사의 ‘漢’자는 ‘韓’자로 바뀐 지 오래다. 이로 인해 한의사는 우리 고유의 의사라는 느낌을 한층 강화했다.그런데 수의사(獸醫師)는 어떤가? 얼핏 죄수들이 입는 옷, 즉 ‘수의(囚衣)’를 연상케 한다. 어떤 경우에는 죽은 사람들이 입는 옷, 또 다른 수의(壽衣)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건물의 관리를 맡는 사람을 ‘수위’라고 부른다. 이 단어 역시 수의사의 발음과 매우 비슷해 자칫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에 얽힌 일화도 있다. 대학 입학시험이 한창이던 어느 날, 모 대학교의 수의대 학장은 다음과 같은 전화를 받았다. ‘혹시 수의학과를 전공하면 유명 관공서의 수위가 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수의사라는 이름이 얼마만큼 우리 사회에 잘못 인식돼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지만, 축산학과에서 개칭한 ‘응용 동물 과학과’에 입학한 어느 여학생은 ‘이 학과를 졸업하면 수의사가 되는 줄 알고 지원했다’고 말했단다. 수의사라는 이름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수의사의 수(獸)자는 짐승 수자이다. 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모든 동물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을 고치고 치료하는 병원을 동물 병원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아울러 수의사법에 따르면, ‘수의사란 수의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서 농수산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자를 말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동물이라 함은 ‘소·말·돼지·양·개·토끼·고양이와 가금류·어패류 등 기타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돼 있다. 그래서 수의사는 ‘동물 의사’라고 바꿔야 옳다.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약의 명칭도 ‘인체 약품’ ‘동물 약품’이라고 구분하지 ‘수의 약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검역소도 동물 검역소, 식물 검역소라고 말한다. ‘수의 검역소’라고 하지 않는다. 동물을 구분할 때도 소동물·중동물·대동물로 나눈다. 짐승 수자를 꼭 써야 한다면, 대수·소수·야생수·실험수라 불러야 되지 않겠는가?한국동물약품협회도 동물 약품을 수의 약품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도 동물을 기르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일에 짐승 ‘수’자를 넣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동물병원 의사들만 수의사라 부르고, 그들이 공부하는 과를 수의학과라 부른다.앞에서도 언급했듯 현대사회는 자신들의 직업이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부드럽게 보여지고 불려지기를 바란다. 청소부는 환경 미화원, 우편배달부는 집배원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우리도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동물 의사’라 불려지길 원한다. 물론 수의학과는 ‘동물 의학과’로 불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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