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가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기 전 외쳤던 말이다. 그간 상존해 왔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은 이 일로 인해 크게 개선됐을 뿐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 발전에도 밑거름으로 작용했다.최근 부산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바로 고현철 국문과 교수의 투신 사건이 그것.지난 17일 오후 3시께 고 교수는 부산대 대학본부 4층 국기게양대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란 내용의 유인물을 현장에 뿌림과 동시에 “총장은 직선제 약속을 이행하라”고 외치며 투신했다. 고 교수는 투신 직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고 교수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급히 식장을 찾아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온 경북대 총장 1순위 후보자 김사열 경북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후 얼굴에서 쉽게 보였던 온화한 웃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를 반증하듯 그의 사무실에서 1년여만에 본 그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해져 있었다.경북대가 지난해 6월 치룬 총장 선출 선거에서 1순위 후보자로 지정된 김 교수는 그러나 교육부의 총장 임용 거부에 현재 법정 싸움을 진행 중이다.지난 20일 총장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김 교수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부에 임용 제청을 촉구했지만 교육부는 현재 항소를 준비 중에 있다.김사열 교수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총장 고르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며 “박 정부는 공약 당시에도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고 했지만 전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역시도 민주주의가 아니게 된 셈”이라며 “정부는 이 점을 인지하고 총장 임용 제청을 수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은 경북대 총장 선출, 그러나 이유는 따로 있었다지난해 6월26일 치러진 경북대 총장 선출 선거는 규정위반 등으로 인해 ‘부정의혹’이 증폭되면서 대학본부 측과 교수회 측의 타협과 협상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던 선거로 알려졌다. 급기야 본부 측은 급조된 총장선거 임용규정을 만들어 재투표를 실시하기에까지 이른다.거기에다 당시 경북대 총장이었던 함인석(경북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전 총장도 이에 가세하면서 “자신과 인맥이 있는 사람을 총장으로 앉히기 위한 술수”란 의심까지 받게 된다.하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교육부의 경북대 신임 총장 임명에 대한 거부였다.당시 교육부는 신임 총장 임명의 거부와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말해줄 수 없다”면서 “총장 임용후보자를 다시 뽑아 달라”고 요청했다.이와 관련 경북대 구성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이 교육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총장을 고르기 위해 펼친 술수란 것을 인지했다. 즉 국립대 다스리기에 돌입한 것이었다.이미 공주대, 안동대, 부산대 등 다른 국립대학에서도 경북대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이에 김사열 교수는 “총장으로 임명되지 못할 정도로 법적인 하자가 없다”며 “내가 승복할만한 임명 제청 사유가 없다면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교육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그리고 이렇게 해서 김 교수와 교육부는 8개월여간의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고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살펴보면 모든 과정에서 교육부의 억지가 확연히 드러난다”며 “정확한 임용제청 거부의 이유를 알리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행정절차법에 어긋난다”고 판결,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재판이 끝남과 동시에 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 장관은 항소를 포기하고 즉각 총장 임용제청에 나서야 한다”며 “국립대 총장 임명과 관련해 대학 자율성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두길 바란다”고 말했다.하지만 교육부는 현재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사열 교수의 든든한 편이 되어준 구성원들 교육부의 이유 없는 ‘총장 선출 거부’와 관련, 이와 대립의 각을 세우며 법정 싸움에까지 이르게 된 김사열 교수에겐 든든한 지지자들이 있었다.경북대학교 구성원에서부터 대구의 여러 시민단체, 심지어 대구 시민들까지 김 교수를 응원했다. 또 경북대 전 의장에서부터 동문회 등 이미 대학을 졸업한 동문들까지 가세해 김 교수에게 힘을 실어줬다.하지만 무엇보다 김 교수에게 힘을 실어줬던 건 바로 8개월여간의 길고 지루한 법정 싸움에서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김 교수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준 이담, 장윤기, 장미영 변호사들이었다.특히 대법관 출신의 장윤기 변호사는 “대구·경북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뒷짐을 질 수는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임료 등과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김 교수를 변론했다.김사열 교수는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자신을 돕고 있는 변호사들은 모두가 적은 수임료를 감안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노력해줬다”며 “이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지난 20일 행정법원의 판결로 승소한 김 교수는 그러나 교육부의 항소에 다시 법정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간 재판 준비로 인해 약간은 소홀히 했던 자신의 생활에도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 김 교수는 교회 장로로써 봉사활동에 매진할 것임은 물론, 대학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사열 교수는 “교육부가 항소를 하겠다는 것을 여러 언론사 등을 통해 확인했다”며 “순리적으로 해결하면 좋은데 계속 되는 법정 공방은 결국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앞서 지난 17일 투신으로써 현 대학교육의 사라진 자율성을 고발한 故고현철 교수와 관련해서도 김 교수는 말을 꺼냈다.김 교수는 “고현철 교수 역시 크리스천인데 그 교수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도 고신파라는 과거 일제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엄격한 교단의 기독교인이었다”며 “그랬던 그가 자살을 금기하는 기독교 윤리를 저버리면서까지 자신의 몸을 투신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대학의 현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며 이에 따른 해답은 없기에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저 역시 이런 고 교수의 뜻을 받들어 끝까지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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