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포루투갈 전에서 승리해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특유의 강직한 얼굴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일갈했을 때 국민은 반신반의했다.당시 ‘죽음의 조’에 편성된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한 것도 충분히 감동적인데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그의 말은 승자가 여유로 내뱉는 그저 그런 멋있는 말 이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4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때부터 분야를 가릴 것 없이 각자의 일에서 일차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로 자신의 목표가 더 크고,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성공한 작가, 예술가, 경영인들이 남긴 자기계발서나 인터뷰 기사에서 그들을 키워낸 원동력 중 8할 이상이 ‘결핍’이었다는 고백적인 글을 보게 됐다. 실제 사석에서 만난 몇몇 기업체 오너들이 그와 비슷한 이야기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듣기도 했다. 이미 그들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뤘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제보다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가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이종격투기에 밀려 관심을 덜 받고 있지만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권투와 프로 레슬링은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던 스포츠였다. 특히 삐쩍 마른 몸으로 링 위에 올라 치열하게 경기를 치르던 권투 선수들의 모습은 국민 모두의 자화상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했다. 외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패하면 모든 국민이 자신이 진 것처럼 탄식하며 안타까워했고 승리하면 모두 기뻐하고 흥분했다. 신문들은 앞다퉈 가난을 딛고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선 복서의 집념과 투지를 보도했으며 ‘헝그리 정신’이라는 글귀가 장식했다. 그가 방어전에서 패해 타이틀을 빼앗기게 되면 ‘헝그리 정신 실종’이라는 글귀가 등장하고 “배에 기름이 차서 패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헝그리 정신!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빈곤하고 굶주린 상태와 같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듯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자세’라고 나와 있다. 이 말은 이제 흘러간 옛말이 돼버렸지만, 헝그리 정신을 전하는 다른 말들이 회자된다. 필자는 직업상 아이돌 가수들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런 헝그리 정신을 발견하곤 한다. 아이돌 가수가 되기 위한 전 단계로 연습생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연습생 생활을 보면 ‘열심히 한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노동부에서 정한 1일 근로시간이 만18세이상 성인 8시간, 만15세이상-18세미만 청소년 7시간인데 청소년인 이들의 1일 훈련 시간이 평균 7시간이 넘는다. 기획사마다 트레이닝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트레이닝에 참여하는 10대 연습생은 방과 후 시간부터 자정 전까지 쉴 새 없이 춤과 노래, 연기를 배우고 익힌다. 방학 기간에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집중훈련을 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런 훈련을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연습생들은 같은 동작을 1000번 넘게 반복하기도 하고, 무릎에 멍이 들어 아프면 보호대를 겹겹이 착용하고서라도 끝내 동작을 완성한다. ‘간절함’으로 무장한 이들은 목적의식은 물론, 책임감과 위기관리능력까지 갖춰가고 있다. 땀으로 온몸이 젖고, 마르기를 반복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은 여자 연습생들도 마찬가지다. 동료와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스타로 발돋움한 지금도 자기 자신과 경주하는 이들의 성공의 비결을 필자는 ‘아이돌 정신’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정신! 그것이 바로 아이돌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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