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보다 인간답게, 보다 나은 문화생활을 누리는 데 있다면 분명히 부(富)는 생활의 필요조건이다. 부(富)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구슬수가 많았던 같다. ‘부는 덕과 노력의 결정’이라고 추앙의 대상으로 보는 데가 있는가 하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경멸하는 곳도 있다.부는 얼마든지 행복의 기본 요건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꿈의 대상이다. 사람에 따라 일생을 투자해볼 가치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 얻어진 좋은 결과는 그만한 노력의 대가이며, 결실이다. 그 대가는 노력에 상응하는 것이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부를 흠모와 선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막연한 거부감으로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부자를 무턱대고 나쁘게 본다는 것은 못난 사람들의 상대적인 빈곤감에서 오는 질투, 혹은 시기 같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1983년 2월 당시 삼성그릅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주력업종으로 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반도체 사업은 불투명한 상태였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이 사업에 이회장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그때 이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삼성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는 어떻게 이뤘든 스스로 자랑할 수가 있고, 남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야 한다. 숨기고 감추는 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재산을 자기 이름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저축하지 못하는 부는 부가 아니라 치욕이다. 도둑이나 사기꾼이 훔친 물건, 빼앗은 물건을 놓고 둘 곳을 몰라 허둥지둥 하는 것과 똑 같은 논리다. 자기 재산을 자기 이름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옳지 못한 재산이고, 또 부정한 방법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결과가 훌륭하면 다 훌륭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재 (理財)에는 그 과정도 훌륭해야 한다. 돈을 벌어 놓고도, 돈을 가지고도 누가 알까바 쉬쉬 한다는 건 혼란한 시대의 산물 밖에 되지 않는다. 구두쇠 노릇을 하며, 먹을 것 안 먹고, 남 놀 때 일하고, 남보다 머리를 더 쓰고 몇 배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자랑스러운 과정이 남이 본받을 만해서, 오늘의 결과와 함께 빛나야 할 그 부(富), 그 재력이 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없다면 뒷문으로 또는 커닝으로 대학에 들어간 것과 똑같은 비유가 될 수 있다. 부(富)에도 덕목이 있고, 윤리가 있다. 그것이 뒷받침 되지 않는 부는 부가 아니다. 부(富)는 큰소리로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부(富)에는 칭송이 따라야 하고 박수도 받을 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참된 부(富)가 아닐까 싶다. 부자(富者)란 ‘재물이 많아 넉넉한 사람을 부자라 한다’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떳떳한 부자는 자랑이어야 한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부자들도 많은 것도 현실이다. 정부가 부자들에게 해외에 숨겨둔 재산을 신고하라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