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이 약관 열아홉에 급제해 스무 살에 파주 군수에 올라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어느 날 근처 유명한 스님을 찾아 좋은 말씀을 청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고작 그것뿐이요?’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스님이 ‘기왕에 오셨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런데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이 넘치는데도 쉬지 않고 계속 따랐다. ‘손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오’, ‘찻물이 넘쳐 사방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알량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순간 맹사성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가끔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중주차한 차주와 그 차로 인해서 불편을 겪는 차주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가는 것을 본다. 같은 아파트단지 안에 사는 이웃사촌인데도 주차시비로 다투는 것을 보면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도로 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잘 달리고 있는 자신의 차 앞에 깜박이도 넣지 않고 불쑥 밀고 들어오는 차를 보면 가슴이 철렁해지고 다음 순간에는 분노가 확 치민다. 그러다 보니 보복운전이란 것이 생긴다. 너도 한번 당해 보라는 것이다. 밀고 들어 온 차를 향해 상향등을 켜대고 경음기를 시끄럽게 눌러댄다. 아니면 앞질러 가서 서행을 하면서 골탕을 먹이거나 급정거로 간이 철렁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다른 사람의 차를 막고 문을 쾅쾅 두들긴다. “야, 이리 나와! 어떤 놈인지 상판 좀 보자!” 손도끼가 나오고 삼단봉도 나오고 회칼도 나온다.꼭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것일까? 상황을 리와인드해 본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중주차로 내 차를 빼 낼 수가 없을 경우 생각해 보면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이게 다 복작거리는 도시에 사는 죄다. 차주가 나와야 한다면 헨드폰으로 연락을 취한다. 차주가 나오면 “미안합니다. 제 차를 빼려고 연락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얼른 빼뜨리겠습니다” 이러면 다음에 만났을 때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도 하게 돼 있다. 도로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밀고 들어오거든 잠시 서행하면서 틈을 내 주자. 설마 밀고 들어 온 녀석이 행패를 부리겠는가. 손을 내밀어 고맙다고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최상의 시나리오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 횡액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체험했다.금요일이다. 한 주간 원고 쓰느라고 컴퓨터와 씨름했으니 외식이나 할까하고 밖으로 나갔다. 명곡 뒷산을 넘어 위천쪽으로 차를 몰았다. 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이던 곳이 이젠 굉장히 복잡해졌다. 사건은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 중에 벌어졌다. 갑자기 내 차 앞에 웬 시커먼 놈이 칼로 자르듯이 밀고 들어 온 것이다. 깜박이고 뭐고 없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다행히 내차 뒤에 바싹 붙어 온 차가 없어서 추돌사고는 없었다. 트럭이었다. 트럭은 내 차 앞을 가로 질러 그대로 옆 차선으로 들어섰다. 그때 마침 빨간불이 들어 와 차를 세웠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함질렀다. “이봐! 당신 왜 그래. 미쳤어!” 이제 트럭에서 누가 내려야 할 차례다. 그리고 시비가 붙을 것이다. 뒷 자석에서 아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큰일 나겠다. 어서 가요!” 그러나 아직 적색신호였다. 저쪽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이제 나오려나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웬걸 트럭은 그대로 유턴해서 가버렸다. 내가 보기에는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다행이다. 하느님 부처님 고맙습니다.난폭운전이란 걸 직접 겪고 보니 참 당황스럽다. 대형사고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블랙박스가 필수품이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 이건 내가 머리를 숙이지 않아서도 아니고 웃으며 봐 줄 일도 아니다. 천우신조한 덕에 사고를 면한 날이었지만 위천에서 먹은 곰탕은 지독하게 맛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