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구·경북지회 회원이자 보석디자이너, 쥬얼리샵인 ‘비옹’과 ‘화인(FINE)’을 운영하고 있는 윤정미 대표의 아침 일과는 언제나 더 나은 보석의 美를 추구하고픈 생각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평소 생활습관은 그녀를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 보성시장에서의 ‘巨頭’로 우뚝 서게 한 비결일지도 모른다.‘순결’한 빛을 뽐내기에 더욱 아름다운 보석. 이런 보석을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열정에 16년간 보석의 외길 인생을 걸어온 윤 대표. 가족을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감성 마케팅을 펼쳐 대구의 보석시장을 전국, 나아가 해외에 알리고 있는 윤정미 대표의 ‘쥬얼리 인생’을 들어봤다.▣ 최고 디자이너 숨결이 깃든 ‘비옹’윤정미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쥬얼리샵 ‘비옹’은 ‘신비스러움을 담은 그릇’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런 뜻 때문일까. ‘비옹’은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며 성장한 쥬얼리샵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지금은 2호점인 ‘화인’까지 생겨나게 됐다. 물론 윤 대표의 보석디자이너로서의 탄탄한 실력도 성장 원인 중 하나다. 윤 대표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각종 쥬얼리 디자인 대회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과 감각 등을 인정받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다.쥬얼리업에 종사해 온지는 올해로 16년 째. 그녀가 쥬얼리업에 뛰어든 건 지난 2000년 겨울 대구의 부도난 디자이너클럽의 쓰러져 가는 매장에 카펫을 깔면서부터다.여기에 중고 진열장을 가져다 리폼하고 가지고 있던 쥬얼리를 녹여 샘플을 진열하고 상담을 통해 그림을 그려가며 처음으로 샵을 열었다. 그렇게 마련된 돈으로 1층 매장으로 옮기고 다시 유통잔지 전자관으로 이전해 1호점을 갖게 됐다. 이곳은 과거에 혼수전문 제품을 주를 이루며 20-30대 층이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2호 프라자점을 오픈한 게 2006년.현재 대봉동 청운맨션 정문 건너편에 위치한 프라자점은 40대 이후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화인’ 쥬얼리샵이다.‘화인 쥬얼리’는 품질 좋은 천영보석과 귀금속으로 플라티늄 계열의 금과 은,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진주 등 귀보석과 자수정, 오팔, 가넷, 비취 등 준보석으로 빚어진 것이다. 프라자점은 이를 콘셉트로 노블레스 고객을 위해 차별화하고 카페처럼 운치 있게 마련된 공간이다.윤정미 대표는 “’행복의 시작은 나로부터’라는 글귀가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작품이 행복하고 그 쥬얼리를 구입하는 고객들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제품이 아닌 내 맘을 담고 싶었던 바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며 힘든 역경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보석시장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경영철학을 밝혔다.▣ 고객 만족 모습에서 커다란 보람대구의 쥬얼리 소비자들이 공동으로 쏟는 말이 있다.“시내 여러 전문 샵을 가 봤다. 여러 종류의 제품을 봤지만 ‘나만을 위한 쥬얼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쥬얼리 특구로 지정된 교동이나 그 외 기성세대들이 운영하는 샵까지 대부분의 보석은 착용보다는 모셔두기 위한 예물이 많다“가 그것이다.이에 대해 윤 대표는 “고객들은 신세대 감각에 심리적인 장신구를 원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은 편한 옷을 걸치듯 세련되고 스타일리쉬 한 분위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표출하기를 원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은 편한 옷을 걸치듯 세련되고 스타일리쉬 한 분위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표출하기를 원한다”며 “비옹은 이를 감안해 현대 트랜드에 맞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쥬얼리’로 디자인해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세심하게 살피며 깊은 신뢰를 쌓아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윤 대표의 말처럼 요즘의 쥬얼리 시장을 살펴보면 장신구에서 비즈 공예나 액세서리 등이 아주 잘 나온다. 하지만 디자인을 패션 위주 분위기로 하면 자칫 귀금속이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윤 대표는 쥬얼리 디자인의 기본원칙을 잘 지키며 디자인하고 여기에 트랜드를 살짝 더한다. 고객들이 싫증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움을 항상 간직하면서 특별한 날 다시 생각하게 디자인하는 게 비결이다.윤 대표는 그동안 쥬얼리샵을 운영해 오면서 “저번에 샀던 게 얼마 전 TV에 나오고 요즘 유행하더라”는 고객 말을 주변으로부터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고 대견해 진다고 덧붙였다.▣ 인생 바꾼 보석이 평생 직업으로윤 대표는 일에 관한 대충 넘어가지 않고 상당히 꼼꼼한 편이다.사업을 하면서 이 점이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평생 직업으로 최고가 되기 위해 매사를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다.윤 대표는 “저녁에 우연히 버스를 타고 가다 가로등이 있는 하얗고 작은 집을 봤다. 알고 보니 보석 가게였다. 그날부터 나도 저런 집에서 이쁜 일을 해야지 다짐했다. 모래 위에 성이 아닌 탄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차곡차곡 보석과 관련한 모든 공부를 했다”며 보석디자이너로서의 시작 배경을 회상했다.윤 대표는 20대의 청춘을 쥬얼리에 쏟으며 배움만이 최선의 길이라 여겼다.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녀는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졸업했다.그녀는 보석학과에서 보석의 기초적인 걸 습득하며 금속성질과 세공, 보석가공과 감정, 디자인 등을 공부해 갔다. 그리고 국가공인 보석감정사와 100년 전통의 영국보석감정사(FGA) 자격을 A로 통과했다. 특히 영국보석감정사 시험은 보석계의 사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라 그 의미가 컸다. FGA는 전문적인 교육자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로 쉽지 않아 아무나 도전하지 않는다.또 윤 대표는 주중엔 학과 수업을 마치고 한국보석감정학원에서 강의를 했고, 주말에는 보석 샵에서 아르바이트로 샵 매니저를 하며 실무도 익혔다. 1999년 서울에서 보석관련 무역회사에서 업무를 익히고 대구에서 못다 한 디자인 공부도 했다.그렇게 윤 대표는 대구과학대학 보석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004년 대구 가톨릭대학교 예술학과로 편입했다. 원래 미술을 좋아해 서양화나 동양화에서 디자인 소재를 많이 찾고 미학적으로 좀 더 깊이 있고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서다.그녀는 “쥬얼리 공부를 할 떄 함께 공부한 업계 경력이 지긋한 분들의 조언이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예술학과 진학도 지금의 쥬얼리샵을 운영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개발을 위한 끝없는 노력윤 대표는 자기개발을 하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즐거움의 요소라고 강조했다.그녀가 바라보는 모든 산물은 ‘캔버스 속의 풍경’처럼 색다른 소재가 된다.서울에서 미술품을 공부하는 것 또한 생활의 작은 즐거움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다.하지만 쥬얼리 디자이너로서 부딪히는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가장 어려운 점은 아이디어 고갈이다.그럴 때마다 윤 대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을 것을 익힌다.때로는 성공신화를 일군 홈플러스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떠올리기도 한다.기업가는 위험을 감수하며 변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모든 것은 ‘발품’에서 이뤄져 간다는 것.어려울수록 더 새로운 것을 보고, 뛰며 “차별화 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그녀의 의지 때문이다.틈나면 해외 전시에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해외 쇼 참관이나 참가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지론을 갖고 있다. 특히 박람회나 쇼에 가면 업무의 연속으로 쇼핑하듯 소비자 눈으로 쥬얼리를 보며 일을 즐긴다.세계의 흐름을 익히고 ‘비옹’의 고객들이 다른 샵의 고객보다 더 세련되고 소장 가치가 높은 쥬얼리를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단순한 눈으로 보면 즐기기만 하는 인생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 대표가 쌓아온 노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는 오산이다.누가 뭐래도 그녀는 젊은 날 진로를 확실히 정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까지 녹록치 않은 과정을 겪으며 부딪히는 일들을 지혜로써 극복해 왔다.그래서 윤 대표는 쥬얼리업을 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직업은 정말 본인의 적성과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가없는 즐거움은 없다는 것이다. 여유를 찾고 즐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것을 희생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자신이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끝없는 노력과 열정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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