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있는 친구가 면허증을 딴지 두 달 만에 겪은 사건은 악몽정도가 아니라 사망체험이었다. 격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부인을 싣고 병원응급실로 가는 중이었다. 복막염인지 급성맹장염인지 아무튼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었다. 119를 불러야 할 일이었지만 부인이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택시라도 잡아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데 환자를 놔두고 큰길까지 나가 택시를 기다리다가는 사람 놓치겠다는 생각에 친구가 직접 차를 몰았다. 아스팔트길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고 차선은 보이다가 말다가 했으므로 앞 차를 따라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네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우회전하면서 폭우로 변했고 오가는 차들이 뒤범벅돼 뭐가 뭔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숨넘어가는 신음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으니 정신이 없었다. 폭우 탓이겠지만 도로상황이 엉망이었다. 그의 앞 쪽으로 차가 달려들다가 황급히 옆 차선으로 피하는 사태가 계속 벌어지는 등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왕초보의 첫 밤나들이에, 응급환자에, 간이 오그라들고 경황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알 수없는 일은 달려오는 차들이 모조리 상향등을 켜고 번쩍거리는 사실이었다. 상대방이야 눈이 부시거나 말거나 자기 편리한데로 상향등을 켜고 달리는 몰상식에 화가 치밀어 그도 마구 컬렉션을 울려댔다. “이러니 사고가 안 날 수 있나!”"저 사람들 왜 저래요? 뭐라고 하잖아요?" 다 죽어 가던 친구의 부인이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깨달았는지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빗줄기 틈으로 운전자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창밖으로 주먹질을 해대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그를 보고 하는 짓거리들이었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 적색신호에 걸렸다. 옆 차선의 택시 운전기사가 소리치는 것을 보고 창문을 내렸다. “왜 그럽니까?” “정신있능교? 중앙선을 넘어 오면 우짜자는거요!” 허억, 역주행! 억수같은 비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 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앞으로 차가 마주 보고 달려오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모조리 상향등을 켜대고 삿대질을 했던 것이고. 응급실에 가기 전에 저승행 특급을 탈뻔 했던 그였다. 마침 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지내나. 뒤숭숭한 시국에” “나 같은 사람이야 이름 석자 나올 일이 없으니 안심이지” “그래 이런 땐 그저 말조심 글 조심 하는 게 제일이지”친구들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 일이 생각나서 물었다. “요새도 가끔 역주행하나?” “웬 역주행은? 허어, 그거” “그래 그거” “역주행이야 정치판에서 열심히 하고들 있잖아. 난 그저 재미나게 살다가 가자는 주의잖아. 틈나면 차 몰고 여행 떠나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고, 산책하고 그러네.” “무병장수하겠네. 칼로리를 줄이는 식습관을 유지하면 11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잘하면 140세까지도 살 수 있다던데.” “그건 모를 일이고, 사는 날까지 낙천적으로 살자는 거지. 아등바등할 필요 없잖아.” 낙천적으로 살자. 아등바등하지 말자. 참 좋은 말이다. 장수노인들의 생활수칙 그대로다.몇 해 전 세계 장수촌을 돌아보던 한 학자가 마사이족이 살고 있는 킬리만자로에 간 일이 있었다. 혈압을 쟀더니 고혈압은 한 사람도 없었더란다.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나 보았더니, 마사이족은 눈 뜨면 초원을 뛰어 다니는 게 일과였다고. “대답이 없네. 전화하던 사람 어디 갔는가?” “어어, 듣고 있네. 일일이 옳은 말이라서 가슴에 새기느라고. 나도 이제 마사이족처럼 틈나면 뛰고 그럴 참이야.” “그거 장수비법인가?” 하나 더 붙인다면 열 받게 하는 정치뉴스를 듣지도 보지도 않는 것이 한국판 장수비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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