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위사업 관련 시험평가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3차 소환 조사를 앞뒀던 40대 연구원 A씨. 그는 가족들이 잠든 지난 14일 새벽 “한 때 실수로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의자가 된 처지에서 거듭된 검찰 조사가 엄청난 압박감이 됐을 것이지만, 그의 자살로 검찰은 또 다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검찰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은 사람은 올 상반기에만 15명에 달한다. 전년도의 21명에 근접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6월 확대간부회의에서 “범죄행위는 명백히 규명해 제재를 가하더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며 이 ‘역지사지’를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도중 자살 사건이 잇따르면서 김 총장이 거듭 강조해 온 ‘사람 살리는 수사’ 기조가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참고인 조사를 받은 40대 여성 B씨가 조사 다음날 자살한 사건이 알려지자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본건 수사를 진행했다”며 강압수사 논란을 일축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피의자 또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사람이 자살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검찰에 지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검찰청’이라는 곳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극히 낯설고 위압감을 주는 곳이다. 특히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고통의 공간이다. 심지어 판사도 예외는 아니다. 사채 업자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 전직 판사는 자신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새벽에 (조사하러) 와달라고 했을 때 검사님이 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었다”며 당시의 불안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만약 당시 이 사건을 맡은 검사가 피의자의 요청을 묵살하고 오전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로 인해 만에 하나 이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명동사채왕 사건’에 대한 수사는 지금과 다른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었다. 정부의 반부패 개혁 기조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특히 공직비리 척결을 1순위로 꼽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범죄로 인식하지 않았던 고질적 적폐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특수부 수사 인력까지 늘리며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검찰이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검찰은 지난 봄 자원외교 수사 첫 타깃이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뒤 수사에 난항을 겪었던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한다.피의자의 입장에 서서 기꺼이 새벽에 조사를 하러 나갔던 한 검사의 수고를 곱씹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