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 검문소에서 경찰관이 쏜 총에 의경대원이 숨진 비극을 두고 경찰은 “장난을 치다 벌어진 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고의가 인정되는 살인사건”이라며 각기 다른 혐의를 적용해 향후 재판과정 등에서 논란이 예상된다.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이기선 부장검사)는 의경대원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서울 은평경찰서 소속 박모(54) 경위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다만 검찰은 살인 고의가 아닌 중과실이 인정될 경우를 대비해 중과실치사죄를 예비적으로 기소했다.은평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참고인(경찰공무원, 헌병, 의경 등) 13명 추가 보완 조사, 구파발 검문소 압수수색, 프로파일러 심리분석,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실시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경위는 실탄이 발사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탄환의 장전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고, 왼손으로 권총의 반동을 억압해 피해자의 심장에 정조준한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총기는 조금만 잘못돼도 사망과 연결되는데 장전된 탄환이 실탄인지 전혀 확인 없이 발사한 것으로 살인죄로 의율함이 타당하다”며 “(반동억압은) 총탄을 발사하겠다는 의지가 구체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살인에 관한 국내 및 미국·독일의 판례, 학설 등을 검토하고 검찰시민위원회 심의 결과 등을 종합한 결과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검찰은 독일 이론을 인용해 “피고인이 사망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위험을 인식하고 행위하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1996년 미국에서 발생한 17세 소년이 총알 1발을 넣고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다 상대방을 사망케 한 사건을 예로 들며 펜실베니아 대법원의 판결을 인용 설명했다.검찰에 따르면 펜실베니아 대법원은 “사람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무모한 행위에 대해 모살(고의적 살해)을 인정, 범행 직후 회한의 태도(Gee, Kid, I`m sorry)를 보였다 하더라도 모살을 인정함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는 경찰의 판단과 배치된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은평경찰서는 지난 3일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박 경위를 ‘업무상 과실치사’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등 협박)’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당시 경찰은 범행동기, 평소 유대관계, 범행직후 행동, 대원 및 군헌병들의 진술 등을 볼때 박 경위가 피해자의 죽음을 바라거나 인용할 만한 뚜렷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필적 고의에 대한 대법원 판례 및 학설의 입장에 따르면, 살인이라는 결과발생을 용인 또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려면 적어도 죽을지 안죽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행위에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살인의 고의에 대해서 판례에선 일관되게 살해의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야 되는건 아니고 행위로 인해서 타인의 살인 위험이나 발생을 예측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보고 있다”며 “경찰이 너무 좁게 해석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건 자체를 보는 시각도 서로 다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가 자신을 빼고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권총을 꺼내 쏘는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던 중 실탄이 발사돼 피해자가 왼쪽 가슴 관통상을 입고 사망한 사고”라고 줄곧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박 경위가 처음에는 장난이었을지 몰라도 총을 꺼내 ‘다 없애버리겠다’며 소리쳤고, 의경들이 평소와 달리 겁을 먹어 ‘이러지 마세요. 살려주세요’라며 말했기 때문에 장난으로 쐈다는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고 반박했다.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구원(국과원)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결과, 실탄이 발사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는 박 경위의 진술은 진실반응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거짓말탐지기 조사할 때) 주관적인 심리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데, 경찰의 질문은 타당하지 않았다”며 “총 쏠 때 고무탄 위치를 알고 쐈느냐 물었는데 박 경위가 ‘예’라고 했고 거짓반응이 나왔다. 견해 차이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경위는 지난달 25일 오후 4시55분께 은평구 구파발 검문소 1생활실에서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꺼내 안전 장치를 제거한 후 박 의경의 70㎝ 앞에서 심장부위를 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프로파일러 심리분석결과에 의하면 우울증을 8년 정도 앓던 박 경위가 따돌림을 당한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의도적 공격(발사)으로 나간 것으로 추론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