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선택한 새 원내사령탑은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이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정당에서 여성 원내대표가 선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번째 원내대표 도전 끝에 승리를 맛봤다. ▣한국당 복당파 ‘충격’나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인 정용기(56·재선·대전 대덕구) 신임 정책위의장은 이날 신임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해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전체 103표 중 절반을 넘긴 68표를 얻어 당선됐다. 김학용(57·3선·경기 안성시)-김종석(53·초선·비례대표) 후보는 35표를 얻어 낙선했다. 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으로 내년 12월까지지만,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으면 2020년 4월 총선 때까지 원내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반면 비박 김학용 의원은 복당파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도 패배, 복당파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친박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나 의원이 당선되면서 향후 친박의 발언권이 세지고 우경화도 가속화될 전망이다.비박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 등 복당파의 발언권은 약화돼 내년 2월 차기 당대표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에서 비박이 당권을 잡을 가능성도 안갯속에 빠져드는 등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당 당헌당규는 국회의원의 잔여 임기가 6월 이내인 때에는 의원총회 결정에 따라 의원 임기만료 시까지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경원 당선 표 분석제1 야당 원내 사령탑에 오른 나경원 원내대표가  김학용 후보 보다 2배 가까운 표가 나온 데는 친박계 결집뿐만 아니라 일부 비박계 잔류파들의 표심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나 원내대표의 68표를 분석해보면 우선 당내 친박계에다 비박에서도 적지않은 표가 결집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번에 기소 등의 이유로 인해 당원권이 정지된 의원은 총 9명이다. 그 중 친박계 의원은 7명, 비박계는 2명이다. 당원권이 정지된 친박계 7명과 친박계이지만 무소속인 서청원 이정현 의원 등을 제외하면 범친박계는 50명 이상으로 예상됐다. 지난 원내대표 선거를 살펴보면 2016년 5월 원내대표 선거 당시 친박계의 지지를 받은 정진석 원내대표는 119표 중 69표를 얻었다. 2016년 12월 선출된 정우택 원내대표는 친박계 지지를 받아 119표중 66표로 당선됐다. 나 의원이 친박표를 싹쓸이하면서 비박표도 상당부분 흡수한 것임을 알수 있다.2017년 12월 선출된 복당파 김성태 원내대표는 108표 중 55표를 얻어 당선됐다. 바른정당 복당파 22명, 비박계 잔류파와 친홍계 의원들을 포함한 총 20여 표에 홍준표 당시 대표의 영향을 받은 일부 친박·범친박 초재선 15~20명의 표가 쏠린 것으로 분석됐다. ▣나경원, 당내 통합 절실나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소감으로 “중책을 맡겨줘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정말 해야할 일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오늘 의원들께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제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선택했다고 본다. 한국당은 지긋지긋한 계파 이야기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 정말 하나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의원들에게 당 화합을 당부했다.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폭주가 여러분들은 아마 무서우실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헌법가치를 파괴하는 속도, 대한민국 판을 바꾸려는 시도, 정말 우리가 할일이 많다. 하나로 뭉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면서 “한국당은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을 이룬 당”이라며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꼼꼼히 챙겨서 제2의 경제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지지율이 20%대를 회복하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취임했지만 선거제도 개편, 유치원3법 처리 등 정치적 현안 뿐만 아니라 민생과 연관된 문제들이 해결해야 할 첫 과제로 꼽힌다.   전체 의석수의 과반에 못 미치는 112석에 불과한 제1야당으로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野) 3당과의 공조도 불가피해 `예산국회`에서 틀어진 다른 야당과의 관계 개선도 나 원내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는 전략과 논리를 앞세운 대여(對與) 협상을 우선시한다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나 원내대표는 정견발표에서 “문재인 정권의 독주와 폭주를 막기 위한 첫 번째 당의 통합이 절실하다”라며 “계파정치는 종식해야 한다. 상대방에 주홍글씨를 씌우는 우리 스스로의 자해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2020 총선 공천권 거머진 나경원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2020년 공천권을 쥐게 될 차기 당대표 선거의 전초전 성격이 크기 때문에 각 진영은 사활을 걸었다.이번에 지면 공천을 못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친박계의 목숨을 건 세 결집이 예상됐다. 이번 선거는 당초 다수 후보들이 출전하면서 계파별 표가 흩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종적으로 계파 간 한 선수씩 등판하면서 세 결집은 예상됐다. 흥미로운 건 비박계 잔류파들이 나 원내대표에게 쏠린 이유다. 비박계 잔류파들이 지난해 복당파인 김성태 원내대표에 쏠린 것과 달리 올해는 나 원내대표를 지지한 것이다. 복당파인 김학용 의원이 당선될 경우 인적쇄신 칼날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을 우려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나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친박계의 지지를 받긴 했지만 친박계는 아니다. 비박계이자 잔류파로 분류되는 나 원내대표에 대해 의원들이 복당파 보다는 거리감을 상대적으로 덜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친박을 중심으로 한 `신당창당설`이 나오면서 당 분열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9주 연속 떨어지지만 한국당 지지율이 정체하는 이유도 각 계파 간 분열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선거기간 내내 `통합`을 강조한 나 원내대표로 표심이 움직인 것도 하나의 이유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 프로필나 의원은 유독 원내대표 선거와는 인연이 없었다.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김재경 정책위의장 후보와 함께 출마했으니 정진석-김광림 후보에게 패했다. 2016년 12월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사퇴하자 원내대표에 다시 출마했지만 정우택-이현재 후보에 패했다. 당내 유일한 4선 여성의원인 나 원내대표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현직 여성 판사출신으로는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의원에 이은 두 번째 정계입문으로 화제가 됐다.  17대 총선을 통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18대 총선에서는 서울 중구에 당선돼 재선의원이 됐다. 나 원내대표는 2006~20008년 당 대변인을 거쳐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관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패배했다. 2012년 4·11총선에 불출마했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서울 동작구을에 출마해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꺾고 당선된 뒤 20대 선거에서도 이곳에서 배지를 달아 4선 의원이 됐다. 2015년 2월 같은 당 정두언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당선됐다. 당시 외교통일분야 첫 여성 상임위원장 당선으로 화제가 됐다.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숭의여중과 서울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졸업 이후 사법시험 24기에 합격해 부산, 인천,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활동했다. △1963년 서울 △서울여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24기 △부산·인천지법·서울행정법원 근무 △한나라당 제6대 대통령 후보 특보 △제17대 국회 한나라당 대변인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변인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중구) △제19대 국회의원(서울 동작구을) △2015년 2-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제 20대 국회의원(서울 동작구을) △2019년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 프로필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11일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됐다. 정 의원은 민주자유당 공채 1기 사무처 당직자 출신으로 범친박 계열로 평가받는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거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후보와 함께 출마해 전체 103표 중 68표를 얻어 당선됐다. 정 의원은 한국당 전신인 민자당 공채 1기 사무처 당직자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8년간 당에 몸을 담은 정통 당료 출신으로 평가받는다.충북 옥천 출신으로 충남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경찰대학교 1기로 입학해 초대 학생회장에 당선됐지만 운동권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입학해 졸업했다.민자당 당직자로 원내총무 보좌·사무총장 보좌 등을 지내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보좌역을 역임했다.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지부 조직부장, 한나라당 대전 대덕지구당위원장 등을 거친 뒤 도전한 17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2006년 지선에서 대덕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된 뒤 재선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에 도전했지만 예비경선과정에서 탈락한 뒤 같은 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대전 대덕구에 당선돼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과 원내부대표 등을 지냈다.안전행정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등에서 두루 활동하고 현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다.정 의원은 자신이 계파색이 옅은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범친박으로 평가받는다. △1962년 충북 옥천 △대전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민주자유당 중앙사무처 공채 1기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보좌역 △제9·10대 대전 대덕구청장 △제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대전시당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 △자유한국당 원내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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